리필스테이션, 다회용 컵 보증금제 등 운영 중단
소비자 긍정 반응에도 실효성 부족 한계 여전해

세븐일레븐은 롯데알미늄, 플랜드비뉴와 함께 세븐일레븐 산천점(서울 용산구 소재)에서 자판기 형태의 친환경 리필 스테이션 '그린필박스'를 2021년 시범 운영했지만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사진=세븐일레븐 
세븐일레븐은 롯데알미늄, 플랜드비뉴와 함께 세븐일레븐 산천점(서울 용산구 소재)에서 자판기 형태의 친환경 리필 스테이션 '그린필박스'를 2021년 시범 운영했지만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다./사진=세븐일레븐 

| 스마트에프엔 = 김선주 기자 | 플라스틱 대신 종이, 일회용 대신 리필···. 유통업계는 2020년대 초반 앞다퉈 ‘친환경 경영’을 내세웠다. 일부에선 '착한 경영'으로 포장한 '그린워싱'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소비자들 중에선 "실질적 변화는 아직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산업 전반에 걸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던 때 유통업계는 서둘러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했다. 올리브영은 일부 매장에 무포장 화장품 코너를 열었고 편의점들은 아이스팩 회수·재사용 시스템을 내놨다. 온라인몰은 플라스틱 완충재 대신 종이 포장재를 도입했고, 스타벅스는 다회용 컵 보증금제를 도입하며 일회용품 줄이기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성과와 실효성을 두고는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리필스테이션 몰락엔 이유가 있다

리필스테이션은 샴푸·바디워시·세탁용품 등의 내용물만 판매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용기를 가져와 필요한 만큼 담아 구매하는 공간이다. 포장재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가격 경쟁력과 친환경을 동시에 강조한 마케팅으로 주목받았다.

아모레퍼시픽은 2020년 10월 업계 최초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했고 2023년 7월을 마지막으로 운영 중단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새로운 리필 제품을 30개 이상 확대했고 이는 본품과 비교 시 약 50% 이상의 플라스틱 사용량 절감 효과가 있었다.

이마트도 2020년 1월 대형마트 최초로 '에코리필스테이션'을 시범 도입했다. 소비자는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전용 용기에 리필해 본품보다 35~39%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도입 초기엔 월평균 1000명, 일평균 구매건수는 50건까지 증가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2021년 세븐일레븐 산천점에서 시범 운영하던 친환경 리필스테이션 '그린필박스'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 반응은 엇갈렸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친환경 소비 인증’이 SNS에서 확산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반면,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20대 여성 소비자는 "원하는 용기에 담아서 보관하고 사용한다는 점 자체가 재밌었다. 개성 넘치는 용기에 담아 친구들과 SNS에 자랑도 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라 느꼈다"고 밝혔다.

다른 40대 여성 소비자는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하면 포장 쓰레기가 줄어드는 건 좋지만, 매장 접근성도 떨어지고 가격 차이도 크지 않아 자주 이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화장품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다른 30대 여성 소비자는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리필 기계에 잔여물이 쌓이면 미생물이 번식할 위험이 있고 소독·세척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교차 오염 가능성이 있다"며 "화장품류는 개봉 후 장기간 노출되면 품질 유지가 어렵다"고 리필스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리필 제품 사용 인식과 고객 수요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고 이를 통해 리필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다시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스타벅스 숙명여대점에서 고객이 세척한 개인 텀블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다회용 컵 사용을 확산하기 위해 텀블레 세척기를 매장에 도입했다./사진=스타벅스 코리아 
스타벅스 숙명여대점에서 고객이 세척한 개인 텀블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다회용 컵 사용을 확산하기 위해 텀블레 세척기를 매장에 도입했다./사진=스타벅스 코리아 

비용 장벽과 정책 후퇴에 막힌 스타벅스 다회용컵

스타벅스는 일회용컵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2021년 제주에서 다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도입했다. 소비자가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컵을 사용한 뒤 반납하면, 컵은 회수·세척 과정을 거쳐 다시 매장에 공급되는 방식이었다. SK텔레콤이 출자한 SK행복커넥트가 핵심 협력자로 참여해 수거·세척 인프라와 자동 반납기 시스템을 구축하며 제도 초반 순항을 도왔다.

시간이 흐르며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 카페에서 일회용컵 하나를 쓰는 비용은 약 50원에 불과하지만, 다회용컵은 수거·세척·재공급 과정에서 컵당 약 200원이 들었다. 컵 한 개당 150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 SK행복커넥트는 다른 브랜드들의 참여가 이어져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확산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타벅스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없었고 SK가 적자를 떠안는 상황이 반복됐다.

설상가상 정책 환경도 제도 안착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애초 종이컵과 플라스틱컵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업계 반발과 혼란을 이유로 단속을 유예하거나 아예 규제를 풀어주는 식으로 후퇴했다. 일회용컵 사용 제한이 흐지부지되면서, 다회용컵 제도가 정착될 수 있는 제도적 압력도 사라졌다.

다회용컵 제도 좌초는 두 가지 요인이 겹쳤다. 민간 기업 단독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높은 비용 구조와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후퇴가 맞물리며, 친환경 실험은 지속성을 잃게 됐다.

전문가들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다회용 시스템이 버티기 어렵다. 정책적 강제성과 지원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진심 없는 '착한 마케팅' 규제 강화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의 ESG경영과 평가대응 방향 제시하고 산업전반 ESG 수준 제고를 위해 2021년 12월 K-ESG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 중 환경 부분에서는 환경경영 목표, 원부자재, 온실가스, 에너지, 용수, 폐기물, 오염물질, 환경 법·규제 위반, 환경라벨링 등으로 구성된 17개 평가 기준이 있다. 2023년부터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 강화 방안’을 마련해 기업이 친환경 문구를 사용할 경우 반드시 근거를 제시하게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소비자를 기만하는 ‘그린워싱’ 기업 제재에 착수했다. 4월 포스코와 포스코홀딩스가 자사의 일부 제품·브랜드를 친환경인 것처럼 광고한 행위는 ‘그린워싱’에 해당한다며 시정명령(금지명령)을 발동했다. 공정위는 2023년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해외에선 어떨까. 유럽연합(EU)은 법으로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 일본 역시 일회용 비닐봉투를 유료화해 소비자 습관을 바꿔놓았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업의 자율적 실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리필스테이션, 다회용 컵 제도의 실패는 친환경 전환이 기업 캠페인이나 일시적 실험에 머물러선 안 되고 정책·시장·소비자 행동 변화가 삼박자로 맞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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