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태우 전 대통령, 5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인정·대국민 사과

1995년 10월 27일 오전 11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재임 중 비자금 조성 사실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그는 사과문에서 "대통령으로 재임한 5년 동안 약 5000억원의 통치자금이 조성됐다"며 "주로 기업인들로부터 성금으로 받아 조성된 이 자금은 대부분 정당운영비 등 정치활동에 사용됐다"고 시인했다. 또한 "쓰고 남은 통치자금은 퇴임 당시 1700억원 가량 됐다"고 했다.

앞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은 같은 달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비자금 4000억원을 시중은행에 100억원씩 분산 예치했다고 폭로했다. 박 의원은 한 은행의 100억원짜리 계좌를 보이며 이것이 분산 예치된 금액 중 일부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자금 관리자로 알려진 이현우 전 경호실장이 검찰에 출두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비자금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전 실장은 모 은행 지점의 차명계좌에 예치된 비자금이 4개 계좌에 모두 485억원이며, 이 돈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시 직접 조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대국민 사과 이후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1995년 12월 5일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약 3400억~3500억원을 받고, 1987년 대선을 위해 조성한 자금 중 쓰고 남은 돈과 취임 시까지 받은 성금 등 1100억여원을 합해 모두 4500억원~4600억원을 조성했다. 이후 검찰은 신한은행 등 9개 금융기관에 개설된 37개 계좌에서 총 4189억원을 확인했다.

1995년 11월 노 전 대통령이 구속됐고, 1997년 대법원은 1997년 4월 노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했다. 취임 직후 자기 재산이 5억원 정도라며 각종 부동산과 예금 내역까지 공개했던 노 전 대통령의 말이 퇴임 약 2년 8개월만에 거짓으로 드러나게 됐다.

비자금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은 "개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명예를 실추시킨 것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작태"라며 "이런 고약한 일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제일 잘 참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밝혔지만 결국 대형 스캔들이 터지는 걸 막지는 못했다.

2005년 6월 14일 해외도피를 마치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인천공항에서 검찰 관계자들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5년 6월 14일 해외도피를 마치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인천공항에서 검찰 관계자들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해외 도피···5년 8개월 잠적

1999년 10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해외로 출국한 뒤 자취를 감췄다. 대우그룹의 경영위기가 심화되고 정부의 그룹 해체 방침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도피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5년 8개월에 걸친 해외 도피생활이 시작됐다.

7월 대우그룹의 제너럴모터스 합작 협상 결렬, 8월 주요 계열사의 워크아웃 돌입 등 김 회장은 궁지에 몰렸다. 김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려고 애썼으나 번번이 실패했으며, 대통령 주위 관료집단이 김 회장과의 독대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결국 해외로 떠난 김 회장. 가족과 측근을 제외하면 그와 접촉했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언론이 김 회장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김 회장에 대해서는 측근의 전언이나 교민 혹은 해외 여행객들의 목격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3월 발부된 김 회장의 체포영장에 따르면, 김 회장은 1997년 이후 4개 계열사에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하도록 지시해 금융기관으로부터 약 9~10조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를 받았다. 또한 영국의 비밀자금 관리조직 BFC를 통해 25조원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와, 대우그룹이 6개 관련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음에도 이를 관계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도 있었다.

2001년 5월 검찰은 김 회장에 대해 기소중지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회장이 2005년 귀국하자 곧바로 신병을 확보해 조사했다. 최종적으로 김 회장은 2006년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개월, 추징금 17조9000억원이 확정됐다.

엔론(Enron).
엔론(Enron).

미국 SEC, 엔론 회계부정 조사 착수···미국 역사상 최대 회계스캔들

2001년 10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에너지 대기업 엔론의 회계부정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8월 셰런 왓킨스 엔론 부사장이 케네스 레이 회장에게 “회계 스캔들의 파도 속에서 회사가 붕괴할 수 있다”는 내용의 메모를 전달한지 두 달 만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엔론은 특수목적법인(SPE)을 수백 개 설립해 막대한 부채를 장부에서 숨기고, 부실 자산을 외부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분식회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마크투마켓(자산·계약의 가치를 시가로 평가)’ 회계 방식을 남용해 장기 계약의 예상 수익을 현재 수익으로 계상하는 등 실제 현금 흐름과 동떨어진 회계 처리로 이익을 과대 계상했다.

엔론은 결국 1997~2000년 재무제표를 재작성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순이익은 기존 10억 달러에서 4억달러로 줄어들었으며, 약 6억달러가 과대 계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1년 10월 발표에서 회사는 계열사 손실과 잘못 계산된 항목들로 인해 주주들에게 약 12억달러 손해를 끼쳤음을 인정했다.

시장의 신뢰는 빠르게 무너졌다. 엔론의 주가는 1년 만에 90달러에서 1달러 미만으로 폭락했고, 신용등급은 정크 본드 수준으로 강등됐다. 이는 80억달러 규모 단기 채무의 조기 상환 요구를 촉발시키며 회사의 유동성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결국 2001년 12월 2일 엔론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산 규모 634억달러에 달하는 이 파산은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수천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투자자들은 연금과 주식 가치에서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엔론의 외부 감사인이었던 세계 5대 회계법인 중 하나 아서 앤더슨도 치명타를 맞았다. 앤더슨은 엔론 관련 문서를 불법 파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공기업 감사 라이선스를 상실했고, 이후 사실상 붕괴했다. 엔론 스캔들은 기업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베인스-옥슬리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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