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온시스템 인수···조용한 승부의 끝
기술은 조용히 말하고 브랜드는 감정을 만든다
"그룹 공용어는 영어다"···글로벌 언어를 조직에 이식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사진=한국앤컴퍼니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사진=한국앤컴퍼니

지난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은 8조4000억 원, 영업이익 7800억 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올해 1분기에도 타이어부문이 호실적을 이어가며 연간 실적 전망을 밝게 했다. 성과는 단순한 경기 반등이나 일시적 수요 증가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심엔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의 치밀한 위기 대응과 조직 재정비, 전략적 반전이 있었다.

위기와 반전···타이어 왕자의 귀환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는 문장은 쉽게 쓰이지만, 그 무게를 입증한 인물은 드물다.

2019년은 조현범이라는 이름 앞에 횡령이란 꼬리표가 따라붙던 시기였다. 언론은 연일 그룹의 앞날을 비관했고 재계는 '승계 실패의 예고편'이라고 평했다.

그룹은 얼어붙었고 조현범은 그날 이후, 한 번도 언론에 해명하지 않았다. 사과문 한 장, 공식석상 한 번. 그 뒤로는 완벽한 침묵이었다.

단순한 잠적이 아니었다. 그는 회사 내부 시스템을 다시 짰고 새로운 리더십 구조를 스케치했다.  동시에 한온시스템이라는 거대한 판을 설계하고 있었다.

2024년, 조현범은 한온시스템 인수를 단행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10년 이상 준비해 온 이 빅딜은 단순한 M&A가 아니었다. 열관리 시스템이라는 모빌리티 핵심 기술을 품에 안으며, 그룹의 정체성을 바꾸는 신호탄이 됐다.

타이어, 배터리, 공조 기술을 아우르는 '모빌리티 삼각편대'를 완성한 것이다.

한온시스템의 열관리 솔루션 /사진=한온시스템
한온시스템의 열관리 솔루션 /사진=한온시스템

이 인수로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자산 총액 26조 원, 재계 순위 30위권 내에 진입했다. 표면적으론 단 한 번의 빅딜이지만, 그 준비는 최소 10년에 달했다. 완성차 업계, 배터리 생태계, 글로벌 기후 정책 흐름까지 고려한 복합 전략이었다. 그는 해외 주요 국가들의 기업결합 심사를 직접 챙기며, 기술자들과의 기술 적합성 검토 회의에도 수차례 배석했다.

한온시스템 인수 직후, 조현범은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새로운 질서를 쓰고 있다."

말은 짧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더 이상 타이어 회사가 아니다. 그는 시장의 판을 바꿀 준비를 마쳤고 첫 수를 조용히 꺼내 들었다.

반전의 드라마는 그의 복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조현범은 그룹의 지배구조를 점검했고, 전략본부의 기능을 재정비했다. 위기 속에서 구성원들과의 소통 시스템을 바꾸고 보고 체계를 수평적으로 재구성했다.

침묵의 시간은 단순한 자숙이 아니었다. 리더십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위기를 복구한 사람'이 아니라, '위기로부터 새 질서를 만든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조현범式 경영과 지속가능 전략

한온시스템 인수는 조현범 리더십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행보는 '경영 복귀'가 아니라, 기업을 재설계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기술, 사람, 사회가 연결되는 구조를 구상하며 실행에 옮겼다.

AI를 도입해 의사결정 속도와 정확성을 높였다. 챗봇 시스템 '챗HK'를 구축하고, 이를 사내 업무지식과 연계해 전사적 정보 순환 체계로 활용하고 있다. 단순한 질의응답을 넘어 경영 판단 자료, 과거 사례 분석, 신규 프로젝트 제안까지 활용한다.

1월 '영어 공용화'를 선언했다. 해외 인력이 많은 것은 맞지만, 전사적 영어 사용은 기업문화 자체를 뒤흔드는 결정이었다. 회의, 문서, 보고 체계 전반에 영어를 사용해 해외 법인과 연동을 빠르게 하고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기본값으로 만들었다.

영어를 쓰기 시작하자, 회의가 짧아졌고, 핵심이 명확해졌다. 글로벌 감각은 브랜드와 기술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유럽시장에서 한국타이어 브랜드 선호도는 2년 새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사진=한국앤컴퍼니
사진=한국앤컴퍼니

"기술이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 게 아니다. 그 기술이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껴야, 신뢰가 생긴다."

기술 전략에선 성능 위주의 R&D에서 벗어나, 운전자 감성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독일 주요 매체에서 테스트 1위를 차지한 겨울용 타이어 '윈터 아이셉트 에보3 X'는 대표적인 결과다.

소비자 반응도 바뀌었다. 타이머 구매는 가격 중심에서 브랜드 경험 중심으로 옮겨갔다. 고객들은 이 제품을 "미끄러지지 않는다" 대신 "믿을 수 있다"고 표현했다.

조현범은 기술로 말하고, 디자인으로 설명하고, 감각으로 설득한다. 조직과 기술 사이에 정서를 두려고 한다. 그가 원하는 브랜드는 '기억되는 기술'이다.

타이어는 굴러가야 한다···사람을 위해

ESG도 선언이 아닌 실행을 택했다. 타이어는 산업 쓰레기의 대표 격이다. 폐타이어는 연간 수백만 개씩 쏟아져 나오고, 재활용이 까다롭다. 조현범은 이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 했다.

"우리가 만든 게 땅에 묻히지 않게 하자. 타이어가 생명을 지켜줄 수 있다면, 그것도 기술이다."

그 결과 해양 방충재 재활용 사업이 탄생했다. 폐타이어를 가공해 해안의 선박 충돌 방지용으로 쓰이는 이 기술은, 해양환경공단과의 협력으로 전국 30여 항만에 설치됐다. 일부 폐타이어는 열분해 과정을 거쳐, 고체 연료나 타이어 재료로 재사용된다.

"기술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 기술을 끝까지 돌려야 한다."

한국앤컴퍼니의 자원순환률은 3년 만에 47%에서 78%로 껑충 뛰었고 UN의 지속가능경영 우수 사례로 채택됐다.

사회공헌도 단발성 기부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통합했다. 사회복지기관 대상 차량 지원 프로그램은 500대 이상이 전달됐고, 인프라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까지 포함했다.

'주니어보드' 제도를 통해 조직 다양성을 확대했다. 입사 5~6년 이하의 젊은 인재들이 제안한 프로젝트가 실제 전략에 반영되는 구조는 국내 대기업에서도 드문 사례다. 이들은 AI 프로젝트, 브랜드 캠페인, 친환경 소재 제안 등을 의제로 올리고 실무 부서와 연동돼 실행까지 이어진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라." 자기주도, 실천 중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룹 문화는 그렇게 스며들었다.

그는 말 대신 실행으로 말한다. 기술을 브랜드로 풀고, ESG를 실천으로 바꾸며, AI를 조직문화에 스며들게 했다. 그 중심에 기술과 브랜드와 사람을 연결했다. 가장 높은 곳보다, 가장 멀리 가는 길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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