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혁 기자
이장혁 기자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해묵은 질문이 한국 자본시장의 시험대로 돌아왔다.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13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은 단순한 법적 분쟁을 넘어, '주주자본주의'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철학이다. 단순한 수익 추구를 넘어, 기업 운영의 투명성, 책임 경영, 장기적 성장성 확보를 요구한다.

MBK는 고려아연의 최대 주주로, 최윤범 회장이 이사회 승인 없이 한화 주식을 헐값에 매각해 주주 가치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매각 후 주가는 두 배 가까이 올랐고, 그 차익만 수백억 원에 달한다.

고려아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시세에 따른 정당한 거래였고, 수익금은 재무 안정성 확보에 활용됐다는 것이다. 주가 상승은 예측 불가능한 사후 결과였으며, 경영상 판단이었다고 항변한다.

쟁점은 명확하다. 이 결정이 전체 주주를 위한 판단이었는가, 아니면 특정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사적 거래였는가다.

MBK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한화와의 연대 가능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단순한 손익 계산을 넘어, 경영진이 주주의 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묻는 핵심 질문이다.

과거 한국 기업은 대주주의 경영권이 절대적인 힘을 가졌지만, 지금은 기관투자자와 글로벌 펀드가 그 권한에 균열을 내거나 견제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돈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지렛대다.

해답은 있을까. 기업 지배구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이사회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이해관계자와의 거래나 자산 매각 등 중대한 경영상 결정에 대해 외부 견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주주 권익 보호 장치를 제도화해 주요 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하며, 경영진에겐 성과뿐 아니라 손실에 대한 책임까지 묻는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주 모두의 자산이라는 인식 아래에서만 충돌은 줄어들 수 있다.

진짜 해답은 법정에서 내려질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답은 우리 경제 전반이 어떤 철학과 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갈등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의 한국 경제가 어떤 지배구조 위에 서게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신호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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