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의 권력구도는 예고 없이 흔들렸다. 호반이 2대주주로 급부상하며 경영권분쟁에 불을 지핀다고 하지만 불씨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보이지 않게, 조용히, 준비된 이름이 있다.
조현민.
조현민 ㈜한진 사장은 조원태 회장의 여동생이자 언니 조현아의 반란을 무너뜨린 캐스팅보트였다. 그때는 오빠 편에 섰지만 영원한 지지는 없다.
조현민은 그룹에서 영향력을 가진 오너다. 브랜드·마케팅·ESG에서 조용히 손발을 넓혀 왔고, 경영회의에도 빠짐없이 얼굴을 비친다. 한진칼 이사이기도 하다.
'회장' 자리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조현민은 조양호 선대회장의 2세 중 가장 말수가 적고 계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가(家) 갈등은 역사가 깊다. 2002년 조중훈 창업주가 타계했을 때 장남 조양호를 중심으로 그룹 전체를 물려주는 유언장이 공개되자 동생인 조남호(한진중공업), 조수호(한진해운), 조정호(메리츠금융)가 "부당한 상속"이라며 반발했다. 형제간 분쟁은 그룹 해체로 이어졌다.
2019년 조양호가 타계하고 또 전쟁이 벌어졌다. 장녀 조현아('조승연'으로 개명)가 행동주의펀드 KCGI, 반도건설과 손잡고 주총에서 장남 조원태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어머니 이명희와 조현민의 지원으로 무산됐다. 쿠데타의 종지부는 산업은행이 찍었다. 조현아는 물러났고 KCGI가 정리한 지분은 호반이 채웠다.

한진가의 한진칼 지분은 조원태 5.78%, 조현민 5.73%, 이명희 2.09%다.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19.96%였는데 최근 한진칼이 44만44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해 20.66%로 늘어났다. 여기에 산업은행(10.58%)과 델타항공(14.9%)이 조원태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된다.
호반은 18.46%를 보유 중이다. 조원태 측과 지분 격차는 2.2%포인트에 불과하다. 경영 참여 의사가 없다고 했지만 의결권 행사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단순 투자'라기엔 지분 확보 방식이 전략적이다.
산은이 조원태체제를 지지하고 있지만 항공 통합이 마무리되면 지분을 털고 나올 수밖에 없다. 한진칼의 의결권 싸움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회장 자리에 앉힐 사람을 두고.
호반이나 산은이 직접 경영에 나설 순 없다. 외부 인물을 회장으로 세우는 것도 부담스럽다. 선택지는 한 곳. 조원태가 아닌 한진가 사람. 정통성도 있고 유연성도 갖췄으며 시장도 납득할 인물. 누굴까.
조현민은 지금 어떤 편에도 서지 않았다. 적도 아군도 될 수 있다. 가장 무서운 인물은 야망을 가진 이가 아니라 침묵하며 준비하는 사람이다.
호반이 경영권을 넘보는 시점이 오고 산은이 중립을 선언하는 순간 누군가 "그녀를 세우자"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