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주채무계열로 지정된 기업 수는 41곳. 1년 전보다 5곳이 늘었다.(신규 : 유진, 부영, 한국앤컴퍼니, 영풍, 엠디엠, 현대백화점, 애경, 글로벌세아, 세아 / 제외 : 금호아시아나, SM, 한온시스템, 호반건설) 기준은 명확하다. 총차입금과 은행 신용공여 잔액이 일정 금액을 넘으면 된다. 숫자는 공정하고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그 숫자 뒤에 어떤 투자 결정이 있었고, 어떤 전략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차입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관리 대상에 올라간다.
'지정'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주채무계열이라는 낱말은 그 자체로 '낙인'에 가깝다. 은행은 더 까다로워지고, 시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해외 투자자들은 "재무구조가 위험하단 뜻이냐"고 되묻는다.
이름이 적힌 기업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자구계획 점검 등 일련의 관리 절차를 밟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를 '체계적인 신용위험 관리'라 하지만, 기업들은 '감시와 개입'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금융 시스템 안정이란 목적은 분명히 중요하다. 리스크가 큰 대기업의 부실이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지만 차입 규모가 곧 리스크라는 전제는, 복잡한 시장 환경을 단순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업이 투자를 멈추고 차입을 줄이면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대가는 성장을 포기하고 방어적인 경영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묻는다.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빚인가?"
기업들은 되묻는다. "미래를 위해 감당할 수 있는 투자는 위험인가?"
숫자는 기업의 일부일 뿐이다. 그 숫자 안에 담긴 의도와 전략, 그리고 책임까지 함께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