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은 권한이 아니라 '신뢰'의 자리
신뢰는 스펙이 아니라 '태도'서 시작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십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_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연설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한 시대의 국정 방향은 선택된 사람보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내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어느 때보다 기술 전문가의 이름이 많고, 그중 다수는 한 기업의 같은 문패를 공유했던 인물들이다. 누군가는 그 출신을 말하지만 지금 필요한 질문은 다르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보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눈길을 끄는 건 한 가지 흐름이다. 기술 기업, 특히 네이버 출신 인사들의 중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최휘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하정우까지. 모두 네이버라는 배경 위에서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들이 정부 요직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건 전례가 없었다.

(왼쪽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최휘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하정우 /사진=연합
(왼쪽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최휘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 하정우 /사진=연합

새 정부가 산업과 기술, AI 기반의 국가전략을 정면에 내세운 점을 고려하면 이 인사들이 상징하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이념이나 정치적 인연보다 기술과 경영, 실무를 우선하는 흐름. 기술 패권이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좌우하는 시대, 자원 없는 나라가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경쟁력뿐이라는 판단이 읽힌다. 기술 기업을 이끌었던 이들이 국가 조직의 한 축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최휘영과 한성숙 후보는 기자 출신으로 국내 최대 포털 플랫폼의 초석을 다진 '콘텐츠 실무가'란 점이다. 정보의 흐름, 뉴스의 구조, 플랫폼의 책임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한 이력이 정책 설계에 어떻게 작동할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언론을 읽고 기술을 만들고 소비자의 데이터를 이해했던 인물이 정부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어떤 균형을 잡아낼 수 있을까.

마냥 환호만 할 일은 아니다. 기업의 논리와 국가의 원리는 구분되어야 한다. 네이버는 그간 국감의 단골손님이자, 대기업 규제 대상 1순위로 지목돼온 플랫폼이다. 내부 거래, 골목 상권 침해, 콘텐츠 편향성 같은 논란이 적지 않았고 공공기관 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법적 다툼도 있다. 포털로서의 영향력만큼이나 규제 대상으로서의 중립성 요구도 높다.

이 상황에서 네이버 출신 인사들이 정부의 규제 주체로 나선다는 건 적잖은 부담이다. 행정의 독립성과 국민의 신뢰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 과거 경력이 족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능력보다, 이해충돌을 피하고 스스로를 투명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아무리 의도가 투철해도, 과정이 무르익지 않으면 오해는 자란다.

공직엔 권한이 따르고, 권한엔 책임이 따른다. 핵심은 공정성과 신뢰다. 공직자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일을 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앞서야 할 덕목은 바로 '이해상충(利害相衝)'의 회피다.

이해상충은 상황의 문제다. 아무리 공정하려 해도, 그 위치가 객관적으로 사적 이해와 공적 책무가 충돌할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다면, 리스크는 시작된 것이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민간 기업 출신이 정부의 규제 부처나 정책 설계 부서에 진입하는 경우, 이해상충은 '윤리적 고민'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로 관리되어야 한다. 본인이 기업의 관점에서 정책을 설계하거나, 과거 동료나 조직과의 연결이 정책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국민의 우려를, 단지 선의로 덮을 수는 없다.

공직자는 스스로의 관계를 점검하고 때로는 물러서며, 판단의 객관성을 입증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해상충은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위험을 관리하려는 투명성과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공직은 권한이 아니라 '신뢰'의 자리다. 신뢰는 스펙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기술 기반 민주주의, 디지털 주권, AI 윤리라는 복잡한 과제를 풀어야 할 이 시점에, 그들이 만들어낼 공공성과 정책이 진짜 '혁신'과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국민은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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