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최악은 피했다' vs 자동차업계 '타격 더 커질 것'
2.5%p 되찾는 재협상 의지 있어야

한미 관세협상이 끝났다.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려던 25%의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하면서 정부는 '최악은 피했다'고 자평한다.
업계의 현실은 다르다. 이번 합의로 0%였던 자동차 관세가 단번에 15%로 뛰었고 일본·유럽과의 비교 우위였던 2.5%p의 가격 경쟁력도 사라졌다. 겉으로는 위기 모면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차가 크다.
일각에선 일본·유럽과 같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게 된 것을 ‘경쟁의 공정화’라고 평가하지만, 이는 한국을 끌어내려 맞춘 결과일 뿐이다.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는 FTA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무관세 혜택을 누리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이번 조치로 가격을 유지하려면 기업이 관세 부담을 떠안아야 하고 가격을 올리면 시장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업계의 한 임원은 영업이익률 두 배에 달하는 15% 관세로 매월 미국에서만 1조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2분기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 3.3% 판매 증가를 지켰지만, 이는 가격 인상 대신 손실을 감수한 결과였고 그 대가로 영업이익은 16% 감소했으며 한 분기에만 8000억원이 넘는 수익이 사라졌다. 앞으로 분기 전체에 관세 부담이 적용되면 타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는 결코 끝이 아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관세 부담을 줄이려면 생산기지를 미국 현지로 옮기는 방안이 불가피하게 논의될 것이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과 유럽은 2.5%에서 15%로 오른 반면, 한국은 0%에서 15%로 뛰어올랐다. 피해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에서 '선방'이라는 평가는 무색하다.
정부는 협상 결과로 사라진 2.5%p의 관세 우위를 어떻게 회복할지 후속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한미 간 추가 협상을 통해 특정 품목의 관세 인하를 재추진하거나, 다른 산업 분야의 양보와 맞교환하는 방식 등 다양한 카드가 필요하다. 현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FTA가 가져다준 혜택의 일부라도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협상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가 할 일도 분명해졌다. 단기적으로는 관세로 인한 재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수출 보조금이나 금융 지원책을 검토해야 하고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고부가가치 분야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해 가격 경쟁력이 아닌 기술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다른 주요 수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관세 인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국내에선 자동차 업계의 생산비 절감을 위해 세제 감면과 물류비 지원,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하며 민관이 함께 미국 내 생산 확대, 부품 현지 조달, 환율 정책 등 다양한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15% 관세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외교적으로는 '위기탈출'로 포장됐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명백한 후퇴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이겨낸 경험이 있듯, 정부와 업계가 긴밀히 협력한다면 이번에도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정부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없다면, 관세 충격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수출 최전선인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굳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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