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쓰오일, 9조원 샤힌 프로젝트로 산업 체질 개선
TC2C 상업화, 고부가 전환으로 석유화학의 게임체인저

에쓰오일이 약 9조2000억원을 투입해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를 추진한다. 정유 중심에서 석유화학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는 탈(脫)정유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에쓰오일이 약 9조2000억원을 투입해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를 추진한다. 정유 중심에서 석유화학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는 탈(脫)정유 전략을 펼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 스마트에프엔 = 김종훈 기자 | 휘발유·경유로 대표되는 정유업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국제 유가와 환율, 정제 마진 같이 외부요인에 따라 실적이 출렁이는 구조 탓이다. 에쓰오일이 약 9조2000억원을 투입해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유 중심에서 석유화학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는 탈(脫)정유 전략이다.

정유의 한계, 복합시설 전환의 배경

4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회사의 수익성을 좌우하는 것은 정제 마진이다. 원유를 정제해 판매할 때 남는 차익이 영업이익의 핵심 지표다. 이 마진은 유가와 수요에 따라 요동친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전 세계적으로 비행기와 자동차가 멈추면서 석유 수요가 급감해 9131억원의 적자를 냈다. 2022년 러우전쟁 땐 석유 공급이 불안정해지자 정제 마진이 급등하며 3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었다. 2023년엔 정제 마진 약세로 영업이익이 약 4606억원으로 급감했다.

이처럼 정유 산업은 '저마진·고변동성'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전기차 확산과 탄소중립 기조로 휘발유·경유 수요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반면 플라스틱·합성섬유·의료소재 등 석유화학 제품은 산업 전반의 기초 소재로 수요가 꾸준하다. 에쓰오일은 정유공장을 석유화학 복합시설로 전환해 석유화학 부문 매출 비중을 현재의 12%에서 25%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공정 진도율은 약 85% 수준이며, TC2C 가열로, 폴리머 주요 설비 등을 설치 완료했다. 자동화창고 구축 및 공정제어시스템 테스트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현재 공정 진도율은 약 85% 수준이며, TC2C 가열로, 폴리머 주요 설비 등을 설치 완료했다. 자동화창고 구축 및 공정제어시스템 테스트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의 핵심···'TC2C'

샤힌 프로젝트의 중심은 에쓰오일의 모기업인 사우디 아람코가 개발한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 기술이다. 원유를 화학제품 원료로 전환하는 세계 최초 상업화 공정이다. 기존 정유사는 원유를 끓여 휘발유, 경유 등 저마진 연료를 주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중간 제품인 나프타를 석유화학 공장에 판매했다. 이때 문제점은 나프타 자체가 원유보다 비쌌고 화학 원료를 만들 때 고작 20~30% 정도만 최종 제품의 원료가 됐다. 때문에 고가의 재료를 썼지만 효율이 떨어져 수익성이 낮고 유가 변동에 취약했다. TC2C는 기존처럼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제 찌꺼기나 저가 원유를 열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등 석유화학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기존 나프타 분해 방식보다 공정 단계가 단축되고 원료 효율이 크게 향상돼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에쓰오일은 이 기술을 중심으로 ▲스팀 크래커(Steam Cracker) ▲폴리머 플랜트(Polymer Plant) ▲자가발전소 등의 핵심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스팀 크래커는 원유 원유 열분해로 연간 에틸렌 180만t을 생산하는 설비다.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의 원료가 되는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생산을 대폭 늘리는 역할을 한다. 폴리머 플랜트는 스팀 크래커에서 나온 기초유분을 가공해 선형 저밀도 폴리에틸렌(LLDPE)과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등의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자가발전소를 통해 공정 중 발생하는 폐열을 재활용해 150MW 규모 전력을 자체 공급하고, 탄소 배출량 저감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에쓰오일은 원유 → 기초유분 → 폴리머 제품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정유와 석유화학의 경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산업 모델이다. 현재 공정 진도율은 약 85% 수준이며, TC2C 가열로, 폴리머 주요 설비 등을 설치 완료했다. 자동화창고 구축 및 공정제어시스템 테스트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TC2C와 NCC의 차이점 비교(TC2C는 NCC와 달리, 원료의 종류와 생산 효율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구분

TC2C (Thermal Crude to Chemicals)

NCC (Naphtha Cracking Center)

적용 기업

에쓰오일

국내 대부분의 기존 석유화학사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

주요 원료

원유 또는 저가 중질유, 정제 과정의 부산물인 잔사유 등

나프타 (정유 공정의 중간 산물)

공정 목표

화학제품 원료 생산 극대화

정유 공정 없이 원유에서 바로 화학 원료 추출

나프타를 열분해하여 화학제품 원료(에틸렌 등) 생산

화학 원료 수율

약 70% 이상 (기존 설비 대비 수율 개선)

약 20~30% 수준

원가 경쟁력

매우 높음 (저가 원료 사용 및 고효율)

국제 나프타 가격 변동에 매우 민감하여 수익 불안정성이 높음

공정 방식

정유-석유화학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

전통적인 석유화학 생산 방식

글로벌 경쟁력과 산업 파급력 시너지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에쓰오일이 글로벌 종합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3가지 승부수를 던졌다.

첫 번째, 원가 경쟁력 확보다. TC2C 기술로 저가 원유를 고부가 화학제품으로 직접 전환함으로써 국제 나프타 가격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한다. 두 번째, 친환경 공정 전환이다. 공정 단축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폐열 재활용과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기술을 적용해 ESG 경영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세 번째, 산업 생태계 강화다. 연간 180만t 규모의 에틸렌 생산으로 국내 석유화학 원료의 수급 안정성을 높인다. 울산 산업단지 내 기업들에 안정적 원료를 공급해 밸류체인 전체 경쟁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에쓰오일은 단순한 원유 구매자가 아니라, 사우디 아람코의 자회사 형태로 연결된 기업이다. 수직 계열화 덕분에 에쓰오일은 다른 정유사보다 원료 수급의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 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더불어 사우디 아람코의 대규모 장기투자는 한·사우디 간 산업 협력 강화의 상징으로도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샤힌 프로젝트는 한국이 정유 중심 산업에서 첨단 화학산업 중심국으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복합 화학 허브로

샤힌 프로젝트는 단순한 설비 투자가 아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구조를 전환하는 게임체인저에 가깝다. TC2C·스팀크래커에서 생산된 기초유분이 울산 지역 중소·중견 화학업체로 직접 공급되면서, 하류산업 전반의 원가 구조와 수익성이 개선될 전망이다. 특히 정유와 화학이 한 공간에서 융합하는 정유-화학 일체형 클러스터가 완성된다. 울산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 화학 허브로 발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또 건설 기간 1만7000여명의 고용과 300여 협력업체가 참여하는 지역 산업 파급효과도 크다. 다만 공급 과잉과 기술 상업화 리스크, 탄소저감 실효성 입증 등 과제도 남아 있다.

샤힌 프로젝트에 대한 염려도 있다. 2026년 가동 시점의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와 유가 흐름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변수다. 중국의 대규모 신규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 우려, 국내 경쟁사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맞물리면 초기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진=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에 대한 염려도 있다. 2026년 가동 시점의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와 유가 흐름이 불확실하다는 점이 변수다. 중국의 대규모 신규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 우려, 국내 경쟁사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맞물리면 초기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사진=에쓰오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딜레마

샤힌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의 시가총액(약 8조원)을 넘어서는 초대형 투자다. 재무 부담이 따른다. 투자금 상당 부분이 차입으로 조달되면서 부채비율 상승과 이자비용 확대가 예상된다. 2026년 가동 시점의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와 유가 흐름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변수다. 중국의 대규모 신규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 우려, 국내 경쟁사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맞물리면 초기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기술적 리스크도 있다. TC2C가 처음 상업화되는 공정으로, 초기 안정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 있다. 에쓰오일은 이에 대비해 ▲TC2C 상업운전의 조기 안정화 ▲재무 건전성 관리 ▲고부가 제품 라인업 확대 ▲친환경 실효성 검증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샤힌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에쓰오일이 유가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의 종합 화학기업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증권가에서는 상업 가동 이후 연간 영업이익이 2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정유의 시대를 넘어 화학 중심의 미래 산업으로 향하는 이번 시도가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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