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슈퍼 예산안과 5개년 국정 계획이 던지는 질문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취임 연설에서 "모든 국가역량이 국민을 위해 온전히 쓰이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듭시다. 작은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진짜 대한민국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고 말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6월 4일 취임 연설에서 "모든 국가역량이 국민을 위해 온전히 쓰이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듭시다. 작은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진짜 대한민국을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고 말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이재명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내걸고 첫 항해를 시작했다. 경제 저성장과 인구 위기, '피크 코리아' 논란 속에서 정부가 꺼내든 해법은 '초혁신경제'라는 이름의 거대한 실험이다. 그 첫 구체적 모습은 총지출 728조 원 규모의 2026년 예산안과 5개년 국정운영 계획으로 드러났다.

AI와 R&D, 전례 없는 투자로 미래의 축 세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인공지능 분야에 10조 10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세계 3대 AI 강국 도약'을 선언하며, AI를 국가 산업 전반에 심어 넣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핵심 제조업(로봇, 자동차, 조선, 가전, 스마트팩토리)에만 향후 5년간 6조원 이상이 투입된다. 지역 거점도 지정됐다. 광주·경남·전북·대구·대전·부울경 등지에 AI 연구·실증 허브를 세워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꾀한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 300곳에 AI를 신속 적용하는 'AX-스프린트 300' 사업에는 9000억 원이 책정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 3일 경기 안산시에 있는 새솔다이아몬드공업을 찾았다. 새솔다이아몬드공업은 반도체 공정 주재료인 웨이퍼를 평탄화하는 부품을 생산하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첨단 강소기업이다. /사진=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 3일 경기 안산시에 있는 새솔다이아몬드공업을 찾았다. 새솔다이아몬드공업은 반도체 공정 주재료인 웨이퍼를 평탄화하는 부품을 생산하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첨단 강소기업이다. /사진=대통령실

기초 인프라 확충도 병행된다. 고성능 GPU 1만 5000장을 추가 확보해 공공 연구 역량을 끌어올리고 대학원 24곳에 AI·AX 특화 과정을 지원한다. 목표는 단순하다. 1만 1000명 이상의 고급 인재를 길러내 국가 경쟁력의 근간을 튼튼히 하겠다는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역시 사상 최대인 35조 3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전년 대비 19.3% 증가한 수치다.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 개발에만 2조 6000억원이 늘어났다. 신진 연구자, 지방 연구자까지 포괄하는 기초연구 생태계 복원에도 방점이 찍혔다.

한 과학도가 대통령에게 직접 “지난 정부에서 기초과학 예산이 줄어 연구가 중간에 끊겨 어려웠다”고 토로한 TV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번 증액은 '연구의 지속성 없이는 혁신도 없다'는 메시지를 재정으로 확인한 셈이다.

국정기획위원회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자료=대통령실
국정기획위원회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자료=대통령실

균형 발전과 복지, '모두의 삶'을 위한 설계

이재명정부의 그림은 성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산안 곳곳에는 지역과 사회 전체를 보듬는 포용 전략이 담겼다.

지역균형발전 부문에는 29조 2000억원이 배정됐다. 거점 국립대 지원 예산만 8733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 넘게 늘었다. 지역 주력산업과 연계해 교육·연구 패키지를 강화하고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상한도 300억원까지 올려 균형발전의 토대를 닦는다.

생활 인프라에도 투자가 이어진다. 지역 의료기관 보강에 1조 1000억원, 광역철도 교통망 확충에 1조 7000억원이 투입된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에는 1703억원이 편성돼 인구 감소 지역 주민 24만명에게 매달 15만원이 지급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3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접경지 주민 간담회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3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접경지 주민 간담회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통신사진기자단

복지 예산은 269조 1000억원, 전년 대비 8.2% 증가했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을 7세에서 8세로 확대하고 아이돌봄 지원 소득 기준을 중위소득 200%에서 250%로 높였다. 청년미래적금 신설, 노인 일자리 110만 개에서 125만 개 확대, 지역사랑상품권 24조원 규모 발행, 대중교통 정액패스 도입도 포함됐다.

국방 예산은 66조 3000억원으로 증액됐다. 첨단무기 개발, 병사 처우 개선, 남북 협력 기반 강화에 쓰인다. 남북협력기금은 8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확대됐다.

재정 혁신, '지속 가능한 성장' 시험대

728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은 곧바로 '재정 지속 가능성'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이에 대해 세입 확충과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으로 답했다.

세입 확충은 법인세·증권거래세율 정상화,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 AI 기반 조세 행정 시스템 도입 등으로 추진된다. 세외수입 확대도 병행된다.

지출은 연간 20조원 규모의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낭비성 사업 폐지, 중복 사업 통폐합, 집행 부진 사업 정비가 골자다. 국가채무는 GDP 대비 50% 후반 수준으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정부는 또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를 개선하고 성과 평가를 강화해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국정 과제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
이재명 대통령이 8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국정 과제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

초혁신경제, 시대의 도박인가 필연인가

이재명정부의 5개년 계획과 2026년 슈퍼 예산은 단순한 재정 집행안이 아니다. 그것은 'AI·R&D를 축으로 한 혁신경제'와 '균형·포용을 축으로 한 사회통합'이라는 두 날개를 동시에 세우려는 실험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이 구호는 수치와 제도로 구체화됐다. 그 길이 순탄할지는 미지수다. 재정 여력, 정책 집행의 속도와 연속성, 국민적 합의가 함께 뒷받침되지 않으면 거대한 청사진은 공허한 선언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도 위기 속에서 미래를 새기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초혁신경제'가 한국을 '위기를 돌파하는 AI·디지털 강국'으로 이끌지, 아니면 또 다른 부채와 갈등을 남길지는 앞으로 5년간의 실행력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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