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암보험 가입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놀라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최근 보험업계 종사자를 만나 "보험금은 약관에 따라 지급하나요"라고 질문했다. 들려오는 답은 "맞습니다"였다. 이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던데"라고 의문을 표시하자, 그는 "그럴리가요"라고 받아쳤다. 그에게 약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법률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어떤 현실에선 약관이 사실상 무시된다.
A씨는 30년 전 암보험을 들었다. 보험사는 '암 치료 목적의 입원에 대한 입원비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약관을 남겼다. 이후 25년이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A씨는 암수술을 받게 되고, 이제 착실히 완납한 보험료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됐다. A씨는 암 절제 수술을 받은 뒤,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보험사는 처음 6개월간은 입원비를 지급했으나, 이후부턴 입원비 지급을 중단했다. 약관은 4일 이상 입원에 대한 입원 일수에 상관 없는 입원비 지급을 약속했기에 A씨는 입원비 지급 거절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보험사 'A씨 입원은 암 치료 목적의 입원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보험사는 손해사정사를 A씨에게 보냈고, 손해사정사는 현장심사 결과 '입원비 지급이 맞다'는 취지의 의견서 보험사에 제출했다. 그런데 며칠 후 해당 손해사정사는 '부지급이 맞다'는 취지의 정반대 의견서로 고쳐 써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가 요청해 의견서 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A씨의 항의가 지속되자, 보험사는 '지급할 보험금이 없음을 확인해 달라'며 A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이 열렸고, 재판부는 약관에 대한 해석보다 의사를 섭외해 당시 진료기록을 감정 받아보자는 식으로 재판을 이끌었다. 감정인으로 나선 한 의사는 'A씨가 통원치료를 해도 되는데 굳이 입원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추가적인 감정이 가능하지만, 약관에 대한 법률적 해석이 아닌 진료기록에 대한 제3자의 판단에 의존한 선고가 내려질 경우 A씨 패소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얘기를 다시 축약하면, '암보험 계약 → 암수술 후 입원 → 보험금 지급 → 갑작스런 보험금 지급 중단 → 계약자 반발 → 보험사의 소송 제기 → 법원의 진료기록 감정 중심 재판 → 진료기록 감정인의 입원 필요성 부정 → 계약자 패소 무게'로 요약된다.
양측의 약관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서 발생한 분쟁인 만큼, 법원이 약관에 대한 바른 해석을 내려주면 될 일인데 실제 재판에선 약관에 대한 해석은 뒷전이다. 원고 측인 보험사가 제공하는 감정료를 받고 보험사에게 유리한 의견을 제시한 진료기록 감정인은 어딘가 보험사의 위탁을 받고 보험사에게 유리한 의견서를 제출한 손해사정사를 닮아 있다. 어쩌면 재판은 짜맞춰진 각본 속에서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A씨 이야기는 신한라이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계약자와 암 입원금 분쟁을 겪고 있는 보험사가 어디 신한라이프뿐일까. 유사한 분쟁에서 계약자가 보험사로부터 약관상의 보험금을 쟁취한 사례는 두 번으로 기억한다. 먼저, 약 1년 6개월 동안 사옥 점거농성을 벌였던 삼성생명 암보험 계약자들이다. 2021년 7월 해당 계약자 21명이 삼성생명과 합의하며 암 입원금을 타냈다. 또 다른 사례는 2023년 교보생명 암보험 계약자의 재판 승소다. 당시 재판부는 진료기록 감정을 신청했으나 받아주는 감정인이 없어 약관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판결했다. 계약자가 1·2심 승소를 했으나, 교보생명은 상고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너무 속보인다. 법원이 약관상 암 입원비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으면 다른 계약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텐데, 그걸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삼성생명도 21명에게 입원비를 지급한 이후 다른 계약자들과는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21명에게 입원비를 지급한 이유가 약관상의 이유가 아니었단 얘기다. 신한라이프 주장대로 A씨의 요양병원 입원이 약관상의 입원이 아니라면 최초 6개월 동안 지급한 보험금은 무엇이란 말인가. 약관상의 보험금 지급이 아니라면 사측의 배임이다.
향후 법원이 A씨의 입원에 대해 '암 치료 목적의 입원이 아니었다'며 신한라이프 승소 판결을 할 경우, 더 큰 문제가 초래된다. A씨의 입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를 통해 암 치료 목적의 입원임을 인정받고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를 지급받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옳다면, 요양급여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의 공적 자금 오·남용이 되므로 공단 측은 잘못 지급된 요양급여에 대한 환수에 나서야 한다. 암 치료 목적이 아닌 사례를 걸러내지 못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요양급여 지급 결정 과정의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는 물론이다. 아마도 A씨와 같은 요양급여자들이 수많을 것이기 때문에 일대 혼란이 예상된다.
이는 보건복지부의 감독 부실로 올라갈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감독하는 주무부처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보건복지부의 수많은 행정 통제의 실패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및 국회의 국정감사가 수반돼야 한다.
가히 사법부와 보건복지부의 충돌이다. 이미 국가 의료시스템이 타당성을 검증한 사안에 대해, 약관에 대한 법률적 해석이 아닌, 통제도 받지 않고 신뢰성도 담보할 수도 없는 진료기록 감정인의 사후적 판단에 의존하는 판결을 내리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도 없이 커지게 될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그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이 같은 부조리에 대해 눈 감아 왔다. 그 틈바구니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애꿎은 보험 계약자들이다. 그들은 멀리 있지 않다. 보험사와 암보험 계약을 맺은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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