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라이프 암환자 채무부존재확인 소송 ④]
재판부 "보험 약관 '해석'보다 '포섭'으로 접근" 권고 
"신뢰성 담보·통제 없는 감정인 판단 의존 재판" 논란

신한라이프가 암보험 계약자 상대로 '요양병원 입원에 대한 지급할 보험금이 없음을 확인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이 1년여간 진행 중인 가운데, 법원이 줄곧 약관에 대한 법률적 해석보다 제3의 감정인을 통한 진료기록 감정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일각에선 법원발 약관 무력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가 하면, 법원이 이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 심사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받은 입원에 대한 재검증을 실시하는 것이어서 정부·사법부 기관 간 판단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 제5민사단독(판사 박이규)은 지난달 신한라이프가 암보험 계약자 A씨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의 네 번째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 다툼은) 약관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기도 하고 포섭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구체적 상황에서 입원이라는 의료적 조치에 적절성이 있냐는 건 해석과는 다른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A씨) 측에서 생각이 있으면, 해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포섭으로 접근한다면, (진료기록) 감정을 한 번 더 받아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쪽으로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해석'이 보험 약관의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면, '포섭'은 구체적인 사건(사실)을 보험 약관에 적용해 적절성을 따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해석이 약관에 대한 판단이라면 포섭은 사실에 대판 판단이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 6월 첫 변론기일부터 포섭에 초점을 맞춰, 제3의 의료 전문가에게 A씨의 진료기록에 대한 감정을 맡기는 방향으로 재판을 이끌었다. <관련기사 2024년 6월14일자 : [단독] 신한라이프 vs 암환자…채무부존재확인 소송 변론기일 '시작'

이후 두 번의 변론기일이 더 있었고, 그 사이 한 종합병원 소속 의사 B씨가 진료기록 감정인으로 나서 지난해 10월 "A씨가 요양병원에서 받은 치료는 ▲효능에 관한 의학적 근거가 없으며 ▲모두 통원치료가 가능하다. ▲진료기록상 A씨에게 입원치료가 필요할 만한 사유는 확인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감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재판은 A씨가 1995년에 신한라이프와 체결한 암보험의 약관 '암 치료 목적의 입원에 대한 입원비를 지급함'에 따른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신한라이프에게 있는지 여부 따지는 소송으로, 감정인 B씨는 사실상 신한라이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지난달 네 번째 변론기일에서 A씨 측에 다른 전문가를 통해 추가적인 진료기록 감정을 받아보라고 권고한 것이다. 약관 해석이 아니라 포섭이 선고의 기준이라면 A씨의 패소는 명약관화였고, 이에 재판부가 A씨 측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 보였다. 

의정부지방법원. 사진=권오철 기자 
의정부지방법원. 사진=권오철 기자 

A씨 측은 숙고 끝에 진료기록 감정을 받겠다는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진료기록 감정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A씨 진료기록은 보험약관 제10조(입원의 정의와 장소)에서 인정하는 병원 중 한 곳인 요양병원 소속 의사가 작성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A씨는 입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를 지급받은 바 있다. 

요양급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그 타당성을 심사받은 뒤에 지급되기 때문에 A씨의 요양병원 입원은 이미 정부기관의 검증을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A씨가 요양병원에서 받은 치료가 법적으로 유효한 치료였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국가 의료시스템을 통한 국민건강보험법상 포섭이 끝난 사안에 대해, 신뢰성을 담보할 수도 없고 통제도 받지 않는 제3의 감정인을 통한 또 다른 포섭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이번 소송에서 A씨가 처한 상황으로 보인다. 

포섭과 포섭의 충돌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보험사가 정부의 판단을 부정한 데서 기인하지만, 재판부 역시 약관에 대한 법률적 해석보다 진료기록 감정이란 포섭에 무게를 둠으로써 그와 같은 보험사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약관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선고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진료기록의 감정이라는 사실 판단에 무게를 싣게 될 경우, 겉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보험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그 결과 약관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사안에서 진료기록 감정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한 나머지, 약관을 벗어난 보험금 지급 거절에 대해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법원이 약관 해석을 통해 판단해야 할 사안을 진료기록 감정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사실상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라며 "이 같은 사법적 관행은 필연적으로 약관을 무력화하고 법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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