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략 협력과 미래 신사업 구상···'반도체 외교' 무게감 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9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9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

| 스마트에프엔 = 이장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글로벌 협력과 신사업 추진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17일 무죄 판결 이후 12일 만의 첫 공개 외부 행보다. 그의 미국행 발걸음은 평범한 비즈니스 출장 이상의 의미를 띤다. 현재 총력전으로 전개되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에서 대한민국 협상력을 끌어올릴 지렛대 역할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29일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취재진이 미국행 목적을 물었지만 그는 짧은 미소와 함께 "안녕하세요"라며 출국장을 빠르게 들어갔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늘 그러했듯 말보다는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었다.

그가 침묵을 지킨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방미 목적이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을 넘어 국가 차원의 외교적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370억 달러(54조 원)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새로운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한국 기업의 단일 해외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삼성전자

이 회장의 미국행 바로 전날, 삼성전자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22조8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테슬라의 차세대 AI 반도체 'AI6'가 내년부터 바로 이 테일러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머스크는 계약 체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165억 달러 규모는 단지 시작점일 뿐이며, 실제 생산량은 몇 배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이번 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을 극도로 강조했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의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는 한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가해지는 관세 압박을 완화할 유력한 카드"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의 투자가 한미 협상에서 미국 내 직접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 AI 기술 협력 등의 설득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미 양국의 무역 전선은 팽팽하다. 8월 발효 예정인 반도체 품목 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 회장의 방미는 정부 협상단에게 든든한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이 움직이자, 다른 총수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역시 이 회장 하루 전 방미길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한국 협상단에 합류해 미국과의 조선 산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 논의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마스가 논의에 나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한화그룹
마스가 논의에 나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한화그룹

미국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삼고 있으며, 삼성과 테슬라의 협력은 이런 전략과 정확히 맞물린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계약이 한미 간 관세 문제에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24일 비공개로 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미국 투자 전략과 관세 협상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판결 이후 외부 일정을 자제하며 경영 구상에만 몰두했던 이 회장은 미국행을 시작으로 글로벌 경영 보폭을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는 한국 경제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국가와 기업의 경계가 희미해진 글로벌 무대에서, 이 회장의 발걸음은 단지 삼성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와 직결된 외교적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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