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파운드리, 기술 넘어 신뢰 경쟁으로
엑시노스 부활?···갤럭시 Z7 시리즈 탑재되나
고객과 기술···삼성 파운드리의 '이중과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기술이 흔들리면 미래는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수차례 강조해온 경영 철학이 다시 삼성전자의 전략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최근 글로벌 전략회의를 마치면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파운드리를 중심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반도체시장 주도권이 흔들리면서, 삼성은 기술력 회복을 넘어 신뢰를 다시 얻는 일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회장이 경영진에게 전달한 "성과보다 신뢰,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글로벌 전략회의의 전반적 기조를 대변한다.

HBM·파운드리, 기술 넘어 신뢰 경쟁으로

삼성은 DS부문을 중심으로 HBM3E(5세대) 12단의 엔비디아 공급 전략, HBM4 양산 시점, 그리고 1c(6세대) D램 기반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집중 논의했다. AMD에 HBM3E 제품 납품을 공식화하며 기술력을 입증한 만큼, 아직 진입하지 못한 엔비디아 공급망을 뚫는 것이 남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HBM시장에서 삼성은 '메모리의 교과서'였지만,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고성능 메모리의 수요가 폭증하는 시점에서, HBM은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AI 생태계 진입의 열쇠다. 삼성은 이 분야에서 성능 경쟁이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와의 신뢰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삼성전자가 매년 개최하는 '삼성 파운드리 포럼'은 고객에 반도체 공정 기술 로드맵을 소개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경쟁력을 알리기 위한 자리다.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와 'SAFE(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 포럼 2024' 행사장이 참석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연합
삼성전자가 매년 개최하는 '삼성 파운드리 포럼'은 고객에 반도체 공정 기술 로드맵을 소개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경쟁력을 알리기 위한 자리다.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24'와 'SAFE(Samsung Advanced Foundry Ecosystem) 포럼 2024' 행사장이 참석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사진=연합

시장에선 삼성의 HBM 전략 실패를 D램시장 점유율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33년 만에 D램시장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줬고 미국 마이크론, 중국 CXMT(창신메모리)까지 빠르게 추격하고 있어, 삼성의 기술 리더십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특히 1c(6세대) D램 기반의 HBM4 양산 계획은 주목할 만하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1b D램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준비하는 반면, 삼성은 수율이 안정된 1c D램을 먼저 HBM4에 적용해 차세대 기술 우위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향후 HBM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객과 기술···삼성 파운드리의 '이중과제'

DS부문의 또 다른 도전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이다. 최근 몇 분기 동안 수천억 원대 적자를 반복하고 있고 시장 점유율은 7%대에 불과하다. 대만 TSMC는 60% 후반대의 점유율을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중국 SMIC는 6%까지 올라오며 삼성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삼성은 선단공정(GAA 기반 2나노 이하) 양산 시점과 신뢰성 확보 전략, 그리고 대형 고객사 맞춤 수주 전략을 중심으로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기술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고객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생산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실적 반등의 핵심이라는 판단이다.

이 회장은 과거 파운드리 조직을 재편하면서 "기술도 중요하지만, 고객과 약속을 지키는 신뢰가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단기적 수율 경쟁보다, 중장기적으로 고객과 함께 생태계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2나노 GAA 공정에 있어 'SF2'란 1세대 기술 개발을 마치고 신뢰성 평가를 완료, 양산 준비에 들어갔다. 공정이 시장에 안착할 경우, 기술 격차 해소의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 엑시노스2500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엑시노스2500 /사진=삼성전자

엑시노스 부활 신호탄···시스템 반도체로 이어지는 미래 설계도

전략회의에선 시스템LSI 부문도 다뤄졌다. 다음 달 공개 예정인 갤럭시 Z7 시리즈에 탑재될 엑시노스 2500의 개발 상황과 향후 프로젝트 논의가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자사 칩셋을 플래그십 제품에 탑재하는 것은 원가 절감이나 제품 차별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엑시노스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 반도체 강화는 AI 기반 모바일 생태계 구축, 칩-소프트웨어 통합 역량 확보, 나아가 ARM 기반 서버칩 확장 전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회장이 강조한 'AI시대 경쟁력은 플랫폼 통합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와도 결이 다르지 않다.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성과보다 신뢰, 속도보다 방향"···이재용의 '리셋' 메시지

글로벌 전략회의는 하반기 전략 점검이 아니라, 삼성 그리고 반도체가 '어떤 방향으로 다시 도약할 것인가' 청사진을 그리는 자리다. 이 회장은 "지금은 기술을 회복하는 시간이자, 다음 판을 짜는 시간"이라며 경영진에게 단기 실적보다 장기 신뢰와 방향성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HBM, 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 모두 삼성전자 기술 전략의 핵심이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사람'이라는 경영 철학이 놓여 있다. 기술을 만들고, 품질을 높이며, 고객의 신뢰를 얻는 과정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위기의 시기일수록 분명해지는 원칙이다.

삼성은 전략의 방향을 '초격차 유지'가 아닌 '초격차 재설계'로 이동시키고 있다. 격차가 좁혀진 지금, 다시 격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기술로 미래를 바꾸자'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10년, 이 회장의 '다음 설계도'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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