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가 지난 25일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미신고 거래소와의 거래금지 의무, 고객확인 의무, 의심거래 보고의무 위반 등이 적발된 것에 따른 제재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두나무에 영업 일부 정지 3개월, 이석우 대표에게 문책경고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두나무는 이튿날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로 업비트를 선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FIU의 제재 조치가 내려지기 한 달 전에 보도된 포브스 기사를 뒤늦게 인용한 것이다. 게다가 금융당국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바로 다음 날이라는 시점은 유감이다. 어떤 잘못이 드러나면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두나무의 보도자료는 그런 시간을 건너뛰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FIU가 적발한 두나무의 잘못은 생채기 같은 사소한 것이었나.
결코 아니다. 두나무에 관한 위법 사항은 수많고 광범위하다. 이는 무려 총 10만건이 넘고 기준에 따라 수백만 건으로 볼 수도 있다. 수사기관 영장과 관련된 고객 15명의 의심 거래를 FIU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자금세탁을 방지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보여주는 도덕성의 현주소다.
우리 사회가 가상자산 거래소의 잘못에 무감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당국의 제재 조치는 두나무의 잘못만큼 무겁진 않아 보인다. 이번 조치로 업비트에서는 오는 3월7일부터 6월6일까지 신규 가입자의 가상자산 이전이 금지된다. 원화가 아닌 가상자산만 해당하는 조치이기 때문에 신규 가입자라도 원화 입출금은 가능하다. 게다가 기존 이용자의 거래는 제한 없이 이뤄진다. 영업의 핵심은 그대로 둔 채 신규 회원이 코인을 이전하는 행위만 막은 것이다. 대표에 대한 문책경고는 중징계라지만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 이상의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두나무가 일반 금융회사였다면 이 대표는 연임 불가 및 3년간 금융권 취업제한에 놓였겠지만, 두나무가 비금융회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 대표는 제재 이후에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물론, 과태료 부과에 대한 결정이 남아 있긴 하다.
이번 두나무 사태와 유사한 해외 사례는 어떨까. 2023년 미국의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고객에 대한 충분한 신원 검증 절차를 하지 않아 벌금 5000만달러를 부과받았다. 당시 코인베이스의 시가총액(116억4000만달러) 대비 벌금의 비율을 현재의 두나무(5조5000억원)에 적용해 단순 계산하면 약 230억원 수준이다. 당시 코인베이스는 벌금 외에 준법감시시스템에 추가로 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었다. 따라서 만약 두나무가 미국 사업자였다면 치러야 할 값은 단순 계산으로 460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곳은 미국이 아닌 '테라·루나' 사태의 권도형이 감형을 바라며 그토록 송환되길 바랐던 한국이다.
두나무는 2021년 가상자산 열풍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70%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국내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막대한 수익을 낸 사업자라면 의무를 저버린 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국제 수준과 동떨어진 낮은 수위의 제재는 규제의 신뢰성을 해칠 뿐이다. FIU는 지난해 10월 국제기구 금융행동태스크포스(FATF)에서 대한민국의 자금세탁방지 준수 등급이 중간 등급에서 최고 등급이 됐다고 밝혔는데, 그 명성에 걸맞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아직 짧은 역사의 가상자산 업계지만, 지금부터라도 강력한 과태료 부과, 경영진 자격 제한 등 조치를 통해 규정 준수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두나무 같은 거물 사업자가 상식이란 감을 잃지 않고 사회적 책임감을 갖게 될 것이다. '신뢰도 1위 거래소'는 이름에 걸맞게 기본을 익힐 필요가 있다. 지금 두나무에겐 그 기본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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