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금융사고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25일 금융당국 발표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에선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됐다. 한 퇴직 직원이 약 30명의 임직원과 공모해 무려 7년에 걸쳐 부당대출을 저질렀다. 7년 동안 하루 평균 3500만원이 줄줄 새버린 셈이다. 더욱이 기업은행은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사고 내용을 축소·은폐하려 했다. 결국 김성태 행장이 즉각 대국민 사과와 함께 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외양간을 고쳐야겠지만 잃은 소가 너무 많아 보인다.
농협의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2월 NH농협은행에서 649억원의 부당대출이 벌어진 것에 이어, 이번엔 농협조합에서 5년간 392건, 1083억원의 부당대출이 드러났다. 그러나 농협중앙회는 이번 사건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입장을 물어보니 "(대출건수, 사고금액 등은) 해당 농협도 모르는 상태"라고 답해왔다.
기업은행과 대조적으로 농협의 대응은 납득하기 어렵다. 농협법은 중앙회에 회원 감사 의무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중앙회장에게는 경영상태평가와 필요한 조치의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회원 조합에서 수년간 부당대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금융당국이 이를 적발·공개하는 처지에 이르렀음에도 정작 내부에선 상황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 감독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두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에서 벌어진 금융사고 금액은 592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이들 은행의 연간 수익 약 16조2000억원의 약 3.7%에 해당한다.
금융사고로 잃은 것은 돈뿐만이 아니다. 신뢰도 잃었다. 정부의 기관신뢰도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2014년 51.8%에서 2023년 63.8%까지 꾸준히 상승해 왔다. 2023년 기준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도는 의료계(72.1%), 교육계(66.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이는 국회(24.7%), 검찰(48.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잇따른 금융사고는 그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은행은 '돈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신뢰를 담보로 영업을 한다. 은행들이 강조하는 비전과 가치에는 늘 신뢰라는 키워드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부당대출이 벌어져도 수년간 알아채지 못할뿐더러 조직적으로 이를 숨기려 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신뢰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은행은 우리의 돈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일까.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금융사고의 긴 잠복기다. 금융사고는 벌어진 뒤 한참 뒤에야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지금까지 드러난 금융사고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벌어지고 있는데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은행은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더 철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오늘날 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금고보다 더 단단해야 한다. 철통 같아야 할 신뢰가 종이짝처럼 뚫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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