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들고 있는 심판의 추가 기울고 있다. 이 원장은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한 토스의 이승건 대표 관련 징계를 이례적으로 두 단계 낮춘 것에 이어, 대규모 부당대출이 적발된 우리금융의 임종룡 회장에 대해선 "임기를 채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금융사 경영자들에 잇따라 관대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금감원은 이달 초 우리은행의 2334억원 부당대출을 적발했다. 경남은행의 '3089억원 횡령'에 버금가는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 730억원, 전현직 고위 임직원 27명이 연루된 부당대출이 1604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금액 중 1438억원(61.6%)은 임 회장의 취임(2023년 3월) 후에 취급됐다.
이 원장은 지난해 8월 손 전 회장 관련 부당대출에 대해 "사고는 전 회장 시절 벌어졌지만, 새로운 회장 체제가 1년 넘게 지났는데도 과거 구태가 반복되는 듯하다"며 임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19일 돌연 임 회장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민간 금융사 회장의 임기를 언급하는 것조차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이른바 관치금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원장은 우리금융 사태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조 전 행장(2023년 7월 취임)보다 4개월 앞서 취임한 임 회장이 임기를 채우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시각이 많다. 책임의 크기는 자리의 높이와 흘러간 시간에 비례해 쌓이는 법이다.
토스의 잘못도 가볍지 않았다. 2022년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서비스 회사)는 소비자 동의 없이 전자영수증 거래 정보 약 2928만건을 무단 사용한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 토스는 해당 정보를 소비자 패턴 분석 등에 썼다.
초기에 금감원 검사부서는 이승건 대표에 대해 중징계인 '3개월 직무 정지' 조치를 요구했지만,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로 두 단계나 감경됐다. 이 원장의 임기 중 유일한 두 단계 감경 사례였다. 만약 이 대표가 중징계를 받았다면 금융지배구조법상 3년간 연임이 제한됐을 것이지만, 징계 수위가 낮아져 오는 4월 연임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비바리퍼블리카가 추진하는 기업공개(IPO)에서의 경영 리스크도 크게 줄었다.
이 원장은 이와 관련 "토스는 금감원이 과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례적 감경이었단 지적에 '토스는 억울할 정도로 충분한 처벌을 받았다'고 항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토스에 내려진 조치가 과했을 수 있다고 금감원이 스스로 판단하는 건 그것 자체로 오류다. 금감원은 법에 따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판단을 내리면 그뿐이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려온 이 원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저승사자'보다는 '수호신'에 가까워 보인다. 이 원장이 남은 4개월의 임기 동안 금감원 수장으로서 무게감과 책임감을 보이길 바란다. 그간 벌여놓은 사안들을 일관된 모습으로 매듭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의 '봐주기'는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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