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소주 가격 인상...원가부담 커진 주류업계, "버틸 만큼 버텼다"

홍선혜 기자 2023-11-02 11:33:02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물가와 민생 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같은날 주류 업계, 아니 국내 유통가의 가장 핫한 뉴스는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소주와 맥주 가격을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라면, 소주 등은 서민 대표 식음료로 가격 인상에 따른 파급 효과가 크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물가 안정을 강조한 날에 이러한 발표는 국민들이 보는 시각에 따라서 정책과 시장의 '엇박자'가 두드러져 보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주류업계에서는 그동안 원가 부담이 너무 커졌기에, 정부의 물가 안정책에 보폭을 더 이상 맞추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이트진로에 앞서 맥주업계 1위인 오비맥주 역시 지난달 5일 맥주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주세가 오르고 맥주 주재료와 부재료 등 원가 또한 가파르게 오르면서 결국 가격 인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소주업계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물가안정을 강요했지만 같은 날 하이트진로가 주정 및 공병 가격 인상 등의 이유로 제품 값 인상을 발표했다. 하이트진로는 오는 9일부터 참이슬 후레쉬와 참이슬 오리지널 출고가를 6.95% 인상할 예정이다. 소주는 서민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만큼 물가인상 체감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현재 가공식품과 외식의 2분기 물가는 각각 7.6%, 7.0% 오르면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치(3.2%) 대비 2배 가까이 치솟은 상황이다.

서울 한 대형마트의 주류 판매대 / 사진=연합뉴스

하이트진로는 국내 소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율도 커질 수밖에 없다.

라면의 경우 정부의 물가안정 지침에 따라 지난 7월부터 농심을 시작으로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가 평균 4~5% 정도 가격을 인하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밀 가격이 50% 안팎으로 내렸다며 이에 맞춰 적정선으로 가격을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류업계는 그 동안 주정가격인상으로 원재료 값을 더 이상 떠안을 수 없을 정도라고 어려운 입장을 내보였다.

가격인상 발표당시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연초부터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 가격이 10.6% 인상되고 신병 가격은 21.6%나 인상되는 등 원부자재 가격, 물류비, 제조경비 등 전방위적으로 큰 폭의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했으나, 정부의 물가안정 노력에 발맞추고 소비자들의 부담을 최소화 하는 선에서 인상률을 결정했다”고 인상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소주제조에 필요한 주원료인 (에탄올) 값은 매년 오르고 있었다. 대한주정판매는 국내 10개의 주정 제조사의 주정 판매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 10년 만에 주정값을 8% 이상 올린 것에 이어 올해 4월에는 주정값을 평균 9.8% 정도 인상했다.

최근까지 기획재정부가 주류업계를 불러모아 간담회에서 가격인상 자제를 요구했지만 현재로서는 당부가 무색한 상황이다. 이렇게 된다면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를 기점으로 롯데칠성음료 등 다른 소주업계들도 잇따라 가격을 올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부의 물가 안정 발표와 주류업계의 가격 인상이 엇박자를 보였지만, 사실 주류 업체 입장에서는 가격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기재부 역시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원가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이트진로는 사전에 기재부 측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인상 결정이 된 것은 맞으나 현재 주정 값뿐만 아니라 병값 병뚜껑 값 까지 모두 오른 상황이라 최대한 버티다가 올리게 된 것"이라며, 인상 발표 시기에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물가 인상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기업들이 줄이어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이 계속해서 가격을 인상할 경우 물가 인상을 더욱 자극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두더지 잡기식 압박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선혜 기자 sunred@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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