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스마트팜] 청년·후계농 "농업 생산비 집계, 타 산업군과 달라"

김철호 기자 2019-11-04 09:09:32

"한 박스 당 얼마에 팔고 있나요?, 생산 원가는요?"

31일 오전 10시 30분 목포 국제 축구센터 내 위치한 1층 강의실 안.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누군가의 질문이 쏟아진다. 이동초 행복한변화연구소 교육 코치다. 그는 수십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띤 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선 2019 후계농(후계농업경영인 줄임) 역량 강화교육이 진행됐다. 후계농 역량 강화교육이란 미래 농업을 이끌어갈 인력을 확보하고자 정부가 추진 중인 농업인 육성사업이다. 매해 11월~12월 경 신청 접수를 받고 있으며 선정된 인원은 15시간의 의무 교육을 토대로 여러 정부 지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교육 강사로 참여한 이동초 코치는 실제 후계농들이 겪고 있는 고충을 해결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농업 종사자의 순이익과 생산 소득을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 지다. 그는 "농업인도 엄연한 자영업자임을 인지해야 한다. 월별 결산서를 기재하거나 경영장부를 작성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전국 후계농들의 강연을 진행하다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생산 비용이 얼마가 들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생산 원가를 알아야 매해 순이익을 비교하고, 투자와 첨단 장비 도입 등을 고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후계농들이 손익 계산의 기초 지수인 생산비용을 인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교육 현장에 참여한 후계농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후계농의 현실적 위치, 경영 일선은 ‘윗 세대’

이정재 교육생은 후계농들이 경영 일선보다는 이선, 3선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정재 씨는 후계농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농업을 이어받았지만, 실제 경영 회계는 경험이 많은 아버지 세대가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파종, 작물 재배 등 전 생산 과정은 후계농들이 담당하되 이윤, 마진율 조사 등은 윗 세대가 담당하는 식이다.

그는 "후계농들은 경영체 자본 운영 측면에서 경험이 없다보니 회계장부를 아버지 세대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버지 세대는 수십 여년간 해당 업계에 종사해 온 농업 전문가인 만큼 믿음직스럽고 의지하는 경향이 짙다"고 언급했다.

덧붙여 "그러나 생산에 투입된 비용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해 총 판매량을 집계하더라도 마진율이 얼마나 되는 지 알지 못한다“며 ”이는 후계농들이 스스로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31일, 목포 국제 축구센터에서 만난 이정재 교육생이 후계농들의 경영 회계 작성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31일, 목포 국제 축구센터에서 만난 이정재 교육생이 후계농들의 경영 회계 작성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

다른 교육생도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전남 부안군에서 토마토 농장을 운영 중인 이철훈 교육생은 “당장 우리 농장만 보더라도 실무는 제가, 경영 회계는 아버지가 담당하고 있다”며 “지난해 순이익을 조사하기 위해 아버지께 비료비 등 생산 원가를 물은 적 있다. 그러나 ‘경험 없고 어린 너가 무엇을 알겠느냐’며 되려 꾸중만 들었다”고 한탄했다.

또 “후계농이란 농업을 윗 세대로부터 이어받은 농부들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다”며 “특히 농촌 지역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짙어 후계농 자체적으로 모든 경영을 운영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생산비 등 경영 회계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주장했다.

"생산 투입비 진단, 현실적으로 어려워"

농업은 그 특성상 생산에 투입된 비용을 진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주장도 세어 나온다. 작황에 따라 종사 시간·투입 비료 등이 매번 다를 뿐더러, 농업 환경에 최적화된 회계 원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생 A씨는 “가령 제품을 가공·유통하는 제조 공장은 생산 비용을 집계하는 것이 쉽고 간단하다. 투입되는 노동력이 체계화 돼 있고 제조 사이클(공정)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농업은 생산 환경 자체가 다르다. 토지, 날씨 등이 좋은 달에는 비료를 적게 줘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때엔 투입 비용이 증가한다”며 “이런 환경을 집계할 수 있는 회계 원부가 필요한데 적절한 시안조차 없는 노릇이다. 후계농 등 농업인들이 생산비 집계를 어려워하고 기피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생산비 집계, ICT 시설로 가능해

이러한 주장에 공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세운 교육생도 눈에 뛴다. 김선제 교육생은 “같은 상황을 겪어 봤기 때문에 A씨의 주장에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농장은 첨단 스마트 장비를 도입한 이후 이러한 문제가 개선돼 추천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김선제 교육생이 생산비 집계에 효율적인 ICT(정보통신기술)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김선제 교육생이 생산비 집계에 효율적인 ICT(정보통신기술)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김 교육생은 최근 자신의 멜론 시설농장에 ICT(정보통신기술) 장비를 도입했다. 복합환경제어기와 자동개폐기, 비료 살포기 등이다. ICT 장비를 토대로 농장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필요한 비료 성분만을 투여해 생산비를 집계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6차 산업시대가 당도한 만큼 국내 농장들도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ICT 장비를 도입하면 농장 삶의 질적 개선 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비교적 정확히 진단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철호 기자 fire@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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