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학생들 "김민웅 교수, 박원순 피해자 2차 가해 안 돼"…서명 운동 나서

"편지 공개, '피해자 다움' 규정하는 행위"
정우성 기자 2020-12-27 21:45:20
김민웅 교수 (사진=경희대)
김민웅 교수 (사진=경희대)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고소한 피해자의 손 편지를 실명을 가리지 않은 채 공개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희대 학생들이 김 교수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서명 운동에 나섰다.

경희대 재학생인 이준서 씨와 이윤서 씨는 27일 '교수님! 성폭력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2차 가해는 이제 없어야만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연서명 제안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최근 김민웅 교수님께서는 박원순 성폭력 피해자의 편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하셨다"면서 "저희는 이러한 행위가 명백한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 학생들은 "또한 편지 공개를 통해 교수님이 의도하셨던 바가 '피해자다움'을 규정하는 행위라 생각했다"며 "이러한 행위는 공동체 모두를 위해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문제제기에 동의하신다면 연서명해달라"고 덧붙였다.

두 학생은 반신자유주의, 대안세계화, 대중의 지식권 쟁취,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PD계열 단체인 전국학생행진 소속이다.

한편 김 교수는 페이스북에 피해자 실명 노출에 대한 사과의 글을 올렸고 박 시장 고소인은 김 교수를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팀에 고소했다.

해당 법은 '누구든지 제1항에 따른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학교, 용모, 그 밖에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신문 등 인쇄물에 싣거나 '방송법' 제2조제1호에 따른 방송 또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사진=페이스북)
아래는 성명 전문.

<김민웅 교수님의 교양수업을 들은 제자들이 교수님께,교수님! 성폭력 피해자에게 행해지는 2차 가해는 이제 없어야만 합니다.>

교수님! 편지 내용 게시 그 자체가 ‘피해자다움’을 단정하는 행위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지난 23일 개인 SNS에 ‘박원순 시장 비서의 손편지’라는 제목으로 피해자의 실명과 함께 편지 내용을 공개하며 “시민 여러분의 판단을 기대해본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게시하셨습니다. 피해자 실명 공개에 대해 기술적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사과하시며 피해자의 ‘4년간 성추행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애틋한 심정으로 편지를 쓰는 마음’사이의 간극과 모순이 이해되지 않아 다른 이들의 판단을 구하고 싶었다고 편지 내용 게시의 의도를 다시금 강조하셨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수님은 ‘어떤 시민들의 어떤 판단’을 기대하고 편지를 공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편지 공개의 목적은 ‘친밀한 관계이기에 성폭력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피해자가 작성한 편지 안에서 보이는 것이 박원순 전 시장과의 친밀한 관계였다는 이유만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이 아닌 피해자를 평가의 잣대 위에 놓이게 한 행위 그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2차 가해입니다. 실명을 노출한 것 뿐 아니라 편지 내용을 의도적으로 게시한 것 자체가 피해자에 가해를 입히는 행위입니다.

교수님! 친밀한 관계에서도 성폭력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사과문에는 ‘피해자와 피해 사실’이 없습니다. 교수님은 오직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여성 인권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해왔기에 그의 명예가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편지 내용을 게시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교수님께서 스스로 쓰신 사과문에도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익히 모두가 알고 있듯 성폭력은 일반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서 비롯되고, 성폭력 피해의 80%는 이웃, 가족, 친구, 동료 등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친밀한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피해자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교수님의 편지 내용 게시는 교수님의 사과문 적혀있는‘피해자다움을 단정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과는 달리 완벽한 피해자다움의 규정입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과 마주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평가의 잣대’에 올라야 했고, 자신의 피해자다움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하는 상황에 매번 몰렸습니다. ‘시민들의 판단을 구한다’는 말과 함께 교수님이 공개한 편지가 또다시 그런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스스로의 피해자다움을 입증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지난 몇 년간 공동체 안에서 권력과 위계에 따른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목격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공동체 내부의 논의는 사라진 채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자다움’을 증명하기를 요구받았고, 가해자를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습니다.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있을 성폭력 피해를 방지하는 해법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교수님의 수업에서 우리는 ‘인간을 위한 정치’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지금 구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의 명예’가 아니며,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교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첫째,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내에서 성폭력이 더욱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사실을 고려할 때 "편지 공개"로 의도하는 피해자다움의 규정과 2차 가해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친밀한 사이 특히 상사와 부하직원 내 성폭력 폭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직장을 포함한 공동체 내 문화를 돌아봐야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드는 길에 함께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우성 기자 wsj@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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