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6)저가항공사라는 명칭은 부정적으로 불리어졌다

김효정 기자 2022-11-12 06:24: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항공사는 독립 직후였던 1946년 3월1일 사업가 신용욱에 의해 설립된 대한국제항공사였으며, 1948년 대한국민항공사(Korea National Airlines)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정부는 도산 직전이었던 대한국민항공사를 흡수해 1962년 6월19일 대한항공공사를 설립했다. 100% 국가가 투자한 첫 국영(國營)항공사였다. 이후 적자투성이였던 대한항공공사를 박정희 대통령의 요청으로 한진상사가 15억원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인수, 오늘날의 민영항공사 대한항공이 1969년 3월1일 설립되었다.

민영항공사였던 대한국제항공사(1946년), 대한국민항공사(1948년)에 이어 국영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공사(1962년)로 바뀌었다가 다시 민영항공사인 대한항공(1969년)으로 변모되는 대한민국 항공역사가 이어졌다.

국영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공사가 민영항공사 대한항공으로 바뀌면서 대한항공이 유일한 국적(國籍)항공사였다. 게다가 사명이 주는 뉘앙스까지 추가되어 대한항공을 국적항공사가 아닌 국영항공사로 오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반 국민들은 국적항공사와 국영항공사를 같은 의미로 오해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도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불과 3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었다. 공무원의 공무나 기업에서 비즈니스 출장이 아닌 일반 국민의 관광 목적 출국은 불가능했다. 일반 국민은 기업의 출장, 학생의 유학, 해외 취업 등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만 국가의 관광 목적 해외여행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광복이후 1980년대까지 순수 목적의 해외여행을 위한 여권은 아예 발급되지 않았다.

정부는 1983년에 가서야 50세이상 국민에 한하여 200만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 유효한 관광여권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사상 최초로 국민의 관광목적 해외여행이 허가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연령과 재산에 기준을 둔 제한적인 해외여행 자유화였다. 이후 해외여행이 가능한 연령대를 해마다 조금씩 낮췄다. 해외여행의 전면적인 자유화라 할 수 있는 시기는 1989년으로 본다.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자신감과 올림픽을 통한 국제화가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지만,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경직된 과정이 있었다. 그것은 반공교육이었다. 당시 여권신청자는 한국관광공사 산하 관광교육원, 자유총연맹, 예지원 등에서 수강료 3000원을 내고 하루 동안 소양교육을 받았다. 해외에서 한국인 납북사례와 조총련 활동 등에 관한 안보교육 등을 받고 교육필증을 제출해야 여권을 내줬다. 이러한 반공교육은 늘어나는 관광객 숫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데다가 상당히 요식적이어서 1992년 폐지되었다. 소양교육 폐지와 함께 신원조회 절차도 대폭 간소화됐다. 그동안 5일이 걸리던 신원조사를 여권발급 신청시 전산확인을 거쳐 즉시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사진=대한항공

우리나라 항공운송사업은 거의 20년 동안 대한항공 1개사만 존재하는 독점체제로 운영되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해외여행 자유화 등의 조치가 맞물리면서 2개 항공사 체제로 바뀌었다. 1988년 2월17일 제2의 민영항공사로 서울항공이 설립되었으며, 1988년 8월11일 아시아나항공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이 같은 양대항공사 체제는 아시아나항공의 수년째 계속된 경영악화로 인한 우여곡절 끝에 2020년 11월 대한항공으로 인수·합병이 결정되면서 흔들리고 있다.

1969년 3월1일 설립된 대한항공은 1988년 2월17일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되고 1988년 12월23일 서울~광주 노선의 국내선 취항과 1990년 1월10일 서울~도쿄 노선의 국제선 취항이 이루어질 때까지 약 20년간 장기 독점체제를 누린 셈이다.

그리고 제3의 정기항공사로 출범한 제주항공이 2005년 1월25일 설립되어 2006년 6월5일 김포~제주 노선의 국내선 취항과 2008년 7월11일 제주~히로시마 전세편 국제선 첫 취항 및 2009년 3월20일 인천~오사카, 인천~기타큐슈 노선의 국제선 정기노선 취항 등으로 이어진 일정을 고려하면 아시아나항공 역시 약 20년 가까이 장기간 동안 양대항공사 체제를 누렸다.

항공법상 항공운송사업은 FSC나 LCC로 구분할 명분은 전혀 없다. 항공법에서는 정기항공사와 부정기항공사로만 구분하였고,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제주항공이 18년 만에 세 번째 정기항공사 면허를 취득한 것이었다.

약 20년의 장기 독점체제를 누린 대한항공과 역시 약 20년의 장기간 동안 양대항공사 체제를 누린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는 제주항공을 제3의 정기항공사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항공사들은 저가항공사란 명칭에 힘을 실었고, 부정기항공사로 국내선 운항을 시작한 한성항공과 엮어서 ‘두 저가항공사’로 갈라치기를 시도한 것이었다. 즉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 등 ‘정기항공사 3사’ 구도가 아닌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양대항공사(혹은 대형항공사) vs 제주항공-한성항공 등 ‘두 저가항공사’라는 이분법적 분할 여론을 폈다. 그리고 이 작전은 실제 성공했다.

타인에 의한 부정적인 저의가 깔린 저가항공사로 불리게 된 제주항공으로서는 불만이었겠지만 취항 초 운항 안정성에 밀려 이렇다 할 대처조차 하지 못했다. 제주항공은 FSC 방식의 기존항공사와 경쟁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방식이자 이미 선진국에서 성공한 LCC 방식을 도입한 것이었는데 굳이 저가항공사로 나누어서 영역을 구분한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기존항공사 입장에서도 제주항공을 동업자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저가항공사는 우리와 다르다’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게 급선무였다. 따라서 제주항공 등 초기 K-LCC들은 우리사회에서 잘못 해석하여 통칭하고 있는 ‘저가항공’이란 명칭을 다른 집단도 아닌 기존항공사들이 애용(?)했던 것에 대해 그 자체를 곱게 보지 않았다. 일종의 비하의 의미로 인식했다. 즉, 우리와는 다른 더 나아가 격이 많이 떨어지는 하격(下格)의 항공사로 몰아갔다고 인식했다.

이 같은 여러가지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당사자는 저가항공사가 아니라고 말하고, 남들은 모두 저가항공사라 부르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제주항공에서는 이후 자신들을 굳이 ‘저가항공사’로 호칭하려면 반대로 기존항공사들에게는 ‘고가항공사’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볼멘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저가’의 반의어는 ‘고가’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LCC가 처음 도입된 2005년 이후 저가항공사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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