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0)제주항공 취항사 9

김효정 기자 2023-04-15 06:04: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제주항공에 대한 ‘쪽집게’ 대응은 예사롭지 않았다. 본격 운항을 앞둔 제주항공에 대한 기존항공사의 견제가 본격화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김포~제주 노선의 경우 제주항공의 운항스케줄과 비슷한 시간대에 한해 아시아나항공이 정상요금 8만4400원보다 30% 할인된 5만9080원에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다. 제주항공의 5만9100원 보다 20원 더 싸게 파는 돌직구 견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항공은 “많은 시간대 가운데 하필 제주항공이 운항하는 시간대에만 할인판매를 하고 있다”면서 “신생항공사에 대해 너무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대한항공도 제주항공 ‘김 빼기’에 합류했다. 대한항공은 김포∼제주 노선의 인터넷 판매를 추가 할인했다. 6월15∼31일까지 특정시간대의 항공편에 한해 운임의 20%를 깎아주기로 한 것이다. 기존항공사들의 노골적인 견제에 제주항공은 3~4일 만에 대응안을 다시 마련하고, 2006년 5월16일 ‘전 노선 대상 또 추가할인’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제주항공은 6월 한 달간 ‘취항기념’으로 김포~제주 노선의 서울발 오후편과 제주발 오전편에 한해 4만6300원으로 추가 할인했다. 다른 노선의 주중 할인요금도 확정 발표했다. 7월 취항예정인 김포~부산 노선은 4만9500원, 8월 취항하는 김포~양양 노선은 4만1000원, 10월 취항예정인 부산~제주 노선은 3만9400원으로 정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제주항공 견제에 다시 제주항공이 가격대응에 나서면서 국내 항공업계는 거센 가격파괴 바람이 불었다. 국내 항공업계는 제주항공 취항을 계기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분해온 국내 항공시장이 3자구도로 재편되면서 그동안 국제유가 급등으로 오르기만 했던 김포~제주 노선 항공요금이 10년만에 왕복 9만원대로 떨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로써 서울과 제주 노선은 왕복 9만2600원에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다시 대한항공이 가세하면서 김포~제주 노선을 비롯한 국내선 항공요금 인하경쟁은 점입가경이 되었다. 대한항공은 제주항공이 취항하는 시점에 맞춰 6월 국내선 인터넷 특별할인에 들어가 19개 국내선에서 5~25% 할인했다. 대한항공의 6월 특별할인에는 할인대상 노선에 제주기점 전 노선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었다. 5월에는 제주를 기점으로 김포, 대구, 부산, 광주, 청주, 원주 등 6개 노선만 할인대상이었으나, 6월에는 인천, 군산, 울산, 진주, 여수 등 5개 노선을 추가했다. 특히 김포~제주 노선에서 주중에 최대 20%까지 할인해 5만8720원을 받고 적용편수도 5월보다 크게 늘렸다. 대한항공은 “국내선 할인행사는 인터넷 구매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연중행사이며 6월은 비수기여서 탑승률이 저조해 할인폭과 대상을 넓힌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에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국내 항공업계에 항공대중화를 이루어 내고 기존항공사들의 철옹성과도 같았던 정기항공사의 벽을 뛰어넘고 국내선 항공운임의 할인을 이끌어내며 승승장구하던 제주항공은 역사적인 첫 취항일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다.

제주항공이 취항 전에 그토록 한성항공과의 차별화에 나섰지만 결국 안전성 논란으로 인해 한성항공과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아직 운항을 시작하지도 않은 제주항공이 안전성 논란에 휩싸인 이유는 2006년 4월17일 기자회견을 갖고 각종 운항계획에 대해 공식발표하는 과정에서 안내한 언론인 시승행사 때문이었다. 이날 제주항공은 항공담당기자들을 대상으로 2006년 5월26일 오전과 오후로 나눠 총 2차례의 Q400 항공기 시승행사를 갖는다고 안내한 바 있었다.

그런데 시승행사를 이틀 앞둔 제주항공이 돌연 취소 안내를 한 것이다. 아직 1호기만 도입된 상황에서 해당 항공기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정식 운항 단계가 아니었기에 충분히 이 같은 사실을 감추고 정비를 마치면 되는 것이었지만 하필 항공업계 출입기자들의 시승 행사를 취소하는 바람에 이를 수상히 여긴 기자들의 집중취재로 인해 항공기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금세 알려졌고, 이는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역사적인 취항일을 불과 10여일 앞둔 2006년 5월24일 “취항도 하기 전에…제주항공 기체결함”, “취항을 앞둔 제주항공 활주로에 빨간 불이 켜졌다”는 등의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뉴스는 또 “제주항공이 도입한 캐나다 봄바디어사의 항공기 Q400기에 기체결함이 발견돼 운항이 일시중지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건교부는 "항공기 기체의 양쪽 프로펠러 회전속도가 다르게 도는 미세한 문제가 발생해 점검을 하고 있다"며 "문제가 시정된 후에 운항허가를 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시 제주항공 항공기의 이상증세는 기체의 양쪽 프로펠러 회전이 5rpm 정도 다르게 나타나는 바람에 에러 메시지가 떴다. 취항이 임박한 시기에 발생한 긴급상황에 제주항공은 캐나다에서 봄바디어사 기술자를 급히 호출해 정밀검사를 벌여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2006년 5월26일 예정이었던 Q400 항공기 시승행사는 일주일이 연기된 6월2일 실시됐다. 우여곡절 끝에 떠오른 제주항공 항공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한지 수 분여 만에 1만8000피트로 고도를 잡고 시속 600km가 조금 넘는 속도로 비행했다. 맑은 날엔 지상의 풍경을 줄곧 내려다보며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비행고도가 1만8000피트로 기존항공사에 비해 2000m 정도 낮게 날았다.

제주항공은 2006년 6월2일 취항을 불과 3일 앞두고 건설교통부 항공안전본부로부터 운항증명(AOC, Air Operator Certificate)을 받아 본격 취항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공식 취항 하루 전날인 6월4일 밤 제주도 제주그랜드호텔에서 취항식을 갖고, 6월5일 오전 9시50분 제주발 김포행 비행기가 제주공항을 이륙해 김포공항에 도착하면서 역사적인 국내 3번째 정기항공사의 첫 취항을 시작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