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62)LCC의 성공은 세상을 바꾸었다 ①

김효정 기자 2023-05-31 06:36: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LCC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국가는 그 나라 항공소비자들의 생활과 문화가 통째로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싸면 그만큼 불편이 따라야 하는데도 이들 LCC는 ‘저가’와 ‘편리성’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와 경영학계에서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혁신사례를 두고 ‘사우스웨스트 효과(Southwest Effect)’라 일컫는다. 기존항공사들만의 세상에서는 비행기 값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은 비행기를 못 타는 사람으로 분류되었지만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본격 취항하면서 이 질서(?)가 처음으로 깨졌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는 부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비행기는 아무나 탈 수 있는 단순한 교통수단으로 그 정의가 바뀌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성공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었다. ①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운항을 시작한 1974년 밸리에서 휴스턴, 댈러스, 샌안토니오 일대를 여행하는 승객은 12만3000여명이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운항을 시작한지 11개월이 지난 1975년 말 승객수는 32만5000여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단기간에 이처럼 승객이 급증한 이유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의 낮은 운임이 많은 사람에게 비행기를 탈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가격을 싸게 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면 얼마든지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고, 성공적으로 항공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했다. 즉, 기존항공사의 승객을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항공수요 창출을 목표로 했던 회사방침이 탁월했다.

아시아의 대표 LCC 에어아시아가 2002년 낮은 항공료로 승부를 걸어 성공을 거둔 뒤 항공요금 할인추세는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에어아시아의 급속한 도약은 기업과 여행객에게 보다 적절한 항공료를 부담하도록 하는 항공사 모델이 얼마나 빨리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에어아시아 취항당시 말레이시아의 일반 국민들은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전체 인구의 10~15% 정도의 소수만이 말레이시아항공이나 싱가포르항공을 탔으며,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4년 말레이시아 언론에는 19세의 한 대학생이 여름방학이면 집안일을 거들기 위해 태국 방콕에서 남부도시 하트야이로 간다는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나왔다. 단지 집안일을 거들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비행기를 탄다’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대학생이 지불한 항공요금은 단돈 30달러(환율 1300원 환산시 약 3만9000원)였다. 에어아시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방학 아르바이트였던 셈이다.

열악한 환경의 항공시장에서 신규 수요를 창출해낸 에어아시아였던지라 승객 대부분은 비행기를 처음 타는 사람들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각종 해프닝을 줄이기 위해 에어아시아는 만화가에게 의뢰해 공항터미널 문을 열고 들어가서 비행기 좌석에 앉을 때까지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만화로 그려서 항공기 탑승방법을 교육시켰다. 그래서 취항 초기 에어아시아의 슬로건은 ‘Now Everyone Can Fly’(이제 누구나 날 수 있다)였다. 에어아시아의 성공은 그렇게 말레이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바꾸었다.

우리나라 역시 LCC 등장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많이 다르다. K-LCC의 자리매김은 세상을 많이 바꾸었다. 제주항공이 2006년 운항을 시작하면서 국내 항공시장의 가격과 서비스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고 그로 인해 고객의 선택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 또 기존항공사의 요금인하 경쟁을 유발하면서 여행경비 절감효과를 가져오는 등 국내 항공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K-LCC의 대거 출현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던 기존항공사의 제주노선 항공요금 인상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특히 관광 성수기에도 항공료 할인폭이 확대되는 등 K-LCC의 항공업계 진출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났다.

2009년 당시 제주도 분석에 따르면 국내 항공업계를 양분하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10여년 사이에 요금을 5차례나 올렸으나 이후 인상을 자제했다. K-LCC의 제주노선 여객수송 분담률이 30%를 넘어서자 두 기존항공사는 오히려 요금 할인폭을 늘리는 기현상마저 나타났다. 1997년 김포~제주 노선 요금(성수기 기준)은 4만9600원이었으나 1998년에는 5만9100원, 1999년에는 7만2500원으로 인상됐으며 2001년에는 7만9000원으로, 2004년에는 9만2900원으로 요금을 올렸다. 국제유가 인상을 명분으로 2년에 한번 꼴로 요금을 올리면서 불과 7년 새에 2배 가까이 올랐다.

그러나 2006년 제주항공을 시작으로 에어부산, 진에어 등이 잇달아 시장에 참여한 뒤 기존항공사는 수년째 요금인상을 자제했다. 2008년 7월부터 항공유 인상시 단계별로 할증료를 부과하는 유류할증료만 도입했을 뿐이었다. 기존항공사들은 K-LCC들과 요금경쟁을 하느라 오히려 할인폭을 확대하고 나섰다.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10월 제주기점 김포, 대구, 청주노선에서 최고 20% 할인했고, 대한항공은 5∼15% 할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K-LCC들이 더 과감한 할인정책을 썼다. 제주항공은 2009년 10월 제주기점 김포, 청주, 부산 노선 요금을 최고 40% 할인하고, 에어부산은 부산~제주 노선 요금을 최고 50%까지 할인했다. 진에어는 김포~제주 노선에 대해 최고 50% 할인했다.

K-LCC 확산으로 우리나라 항공업계의 가격파괴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해냈다. 2010년 12월 티웨이항공이 진행한 1만원 할인이벤트는 말 그대로 '대박' 마감을 했다. 12월8일부터 31일까지 전 좌석의 10%를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100% 예약률로 7500석이 매진됐다. 또 2011년 1월12일 한 직장인은 점심식사 후 제주항공에서 '1만원' 항공권을 예약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접속자가 폭주해 예약은커녕 홈페이지 접속조차 하지 못한 채 입맛만 다시고 결국 예약을 포기했다. 김포에서 제주까지 1만원권 비행기 티켓이라는 거짓말 같은 이벤트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2만원에 서울에서 제주를 오간다는 건 다른 어떤 교통수단으로도 불가능했다.

K-LCC 입장에서 역마진이 뻔한 이벤트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제주항공이 취항 이후 2010년까지 탑승추이 통계를 뽑아본 결과 설 직전 한 주가 연중 가장 비수기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텅 빈 비행기를 운항하며 손해를 보느니 1만원에 팔아서라도 손실폭을 줄여보자는 전략이었다. 공교롭게 이때가 창립기념일이 있는 기간이어서 고객성원에 보답한다는 명분도 보탰다. 제주항공은 "평소 항공권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해서 항공기 이용을 꺼렸던 고객과 수익성을 고려한 항공사의 전략적 프로모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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