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변화무쌍했던 세계 잼버리, “지금 이 순간”

한국 문화 경험한 스카우트 대원들 환한 얼굴 반가워
'좋은 기억 담아가라'는 온 국민 염원 간직하기를
2023-08-10 18:29:45
지난 2일 전북 부안 새만금 야영지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서 참석자들이 행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404잉화도지역대


“엄마, 잼버리 참가하고 시야가 좀 넓어지고 내가 좀 달라진 것 같아. 꿈꾸고 온 기분이 들어. 너무 아쉬워. 6일밖에 되지 않았잖아. 앞으로 남은 6일을 기대하고 있었거든. 이제야 적응하고 본격적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었는데. 준비해 간 선물도 아직 나누지 못했어. 정말 재미있었단 말이야. 오늘 잼버리 웰컴 팩 과자를 받았는데 퇴소라니···”

중학교 3학년의 분주한 학원 일정을 제치고 세계 잼버리에 참석한 딸. 잼버리 6일차 되는 날, 어이없는 퇴소 소식을 들었다. 잼버리 참가자들은 야영 대신 전국 각지의 호텔과 사찰, 기숙사 등을 숙소로 배정받았지만 그 중 일부 국내 참가자들은 집으로 향했다. 샤워 부스도 없는 열악한 숙소를 배정받은 딸의 대대 대장과 대원들도 일단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고 의견을 모았고, 모두는 그렇게 헤어졌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며 아쉬움을 담은 딸의 투정은 당연했다.

“오늘 아침 새벽 4시에 누가 텐트를 흔드는 거야. 퇴소를 준비하라고 깨웠어. 전날 갑작스런 퇴소 소식에 너무 슬프더라고. 친하게 지냈던 칠레 친구가 내 텐트에 와서 울었다. 헤어지기 싫다고.”

“울었다고?” 감수성 여린 또래 친구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찡 했다. 이것이 어른들의 횡포인가! 딸은 무거운 짐 가방을 거실에 풀어놓으며 보여줄게 있다고 했다.

“이 티셔츠에 친구가 써 준 거다. 나한테 ‘히비스코’라는 이름도 지어주었어.”

“오스트리아 친구들이 바로 옆에 있었거든. 코알라 인형 너무 귀엽지? 이 항건에 하는 거야. 딱 내 취향.”

“이건 인도네시아 친구가 준 커피인데 먹어보니 맛있더라고”

“친구들한테 받은 명함들 좀 봐”

여기에 기업 협찬으로 받은 티셔츠, 모자. 핸드폰 배터리까지 딸의 자랑은 끝이 없었다. 딸의 티셔츠에는 각 나라 친구들이 자국어로 자신들의 이름과 짧은 글을 써 흔적을 남겼다. 참가자들은 자국의 이미지가 담긴 항건과 기념품을 서로 교환하며 친구가 됐다.

뉴스에서는 새만금 잼버리 현장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인 듯 보도됐지만, 다행히 딸은 어느 정도 즐겁게 적응하며 지냈다고 한다. 뉴스를 본 일가친척과 지인들이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뉴스에 나오는 그 정도는 아니야. 열악하기는 한데. 괜찮아.”라며 차분하게 답했다.

“내 옆 텐트에는 스위스, 폴란드, 칠레.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말레이시아. 너무 신기해. 오늘도 친구들 만나는 '델타'에 다녀왔어. 나 많이 걸어서 이젠 마라톤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딸은 잼버리 2주전 사전 훈련을 다녀온 이후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12일의 여정에 필요한 짐을 챙기고, 외국 친구들에게 선물할 기념품을 구입 했다. 사실 딸 뿐 아니라 온 가족은 주말까지 반납하며 잼버리 준비를 했다. 물론 함께 설렜고 기대했다. 세계 잼버리는 참여하는 학생 뿐 아니라 부모님도 함께하는 행사인 셈이었다.

딸이 소속 되어 있는 스카우트 중앙연맹 대대에서는 두 달 전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부모님들을 위한 세계 잼버리 설명회를 개최하고, 단체 톡방을 만들어 모든 내용을 공유했다.

대원들의 부모는 장거리 트레킹에 적합한 신발과 뒷목 가리개 모자, 판초 우의, 아웃도어 타월, 포켓 나이프, 여행용 파우치, 탑스타 장갑, 슬링백 등의 장비 정보 뿐 아니라 잼버리 우표 구입, 기념품 보관 방법 등의 요령까지 세심하게 공유하고 추천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잼버리가 열린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대원들은 여느 때보다 많은 선물을 준비했고, 서로의 문화 교류를 위해 지정된 ‘문화의 날’에 입을 한복, 태권도복, 암행어사복 등을 준비했다. 잼버리를 앞두고 런닝맨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는 방송 캡쳐 본을 함께 보며 들뜬 기분을 나눴고, 대원들은 생애 처음 자신들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연락처를 담은 명함도 제작했다.

그리고 새만금으로 떠나는 날, 전날 늦은 시간까지 짐을 챙기고도 새벽 5시에 벌떡 일어난 딸은 자신의 키 만한 배낭을 꺼이꺼이 메고, 한 가득 웃음을 머금은 채 잘 다녀오겠다고 떠났다. 잼버리의 즐거움을 아는 나로서도 딸에게 열심히 응원하고 조언했다. 

스카우트인인 나는 자랑스럽게도 개영식에 초대받아 새만금 현장을 찾았다.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참석했다. 스카우트 세계잼버리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영식에 참석하는 의미가 남달랐다. 대통령 내외가 참석하는 행사라 그 의미는 더 컸다.

저녁이 되어 잼버리장 입구에 들어선 나는 부푼 가슴으로 대원들을 만났다. 한국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고 모두에게 어깨를 끌어안고 인사를 하고픈 반가움. 개영식의 내빈부터 모두 한마음 한뜻인 듯 스카우트 대원으로 활동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도 반갑기만 했다.

이 뜻깊은 시간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 찍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개영식에서 받은 항건과 입장 목걸이가 뿌듯해서 개영식을 마치고 서울 집에 올 때까지 계속 메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새만금 세계 잼버리에서 보고 온 것은 단면일 뿐이었던가. 언론에 비춰진 새만금 세계 잼버리의 모습은 끔찍했다. 개영식에서 자신의 나라 소개가 나오면 큰 함성으로 응원하던 대원들, 함께 밝은 얼굴로 참여했던 뿌듯한 모습의 대원들 사진은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잼버리에 대한 수많은 문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과장된 기사라고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부안군 인구는 4만9000여명. 새만금에 모인 대원들이 4만6000여명이라고 했으니 스카우트 대원들로 새로운 도시 하나가 만들어진 거다. 156개국 청소년들이 참가해 ‘청소년의 올림픽’이라고 할 만큼 큰 행사에 미흡한 준비로 대처했다는 것은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준비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장 경험이 있는 스카우트 대장들이 배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카우트 경험을 갖고 있는 대장들은 조직위원회 전체 인원의 20%에 불과했다. 스카우트 잼버리의 수많은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배수를 비롯한 화장실, 샤워실 부족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왜 없었겠는가. 현장에서 누구보다 강력하게 지적했을 부분들이다. 이런 전문가들의 항의를 무시한 자, 누구인가.

지자체와 정부의 예산이 소요되는 행사여서일까. 조직위의 많은 인원은 스카우트 활동 경험이 거의 없는 공무원들로 채워졌다. 합리적인 예산 집행 방법이 있었을 텐데도 예산 사용을 원활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입찰제를 도입해 막대한 예산을 조목조목 들여다보지도 않고 써버렸다. 세계 잼버리 개최 전에는 한국 잼버리를 열어 문제점을 찾아내 보완하고 개선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여러 이유로 열리지 않았다.

문제를 제기했던 스카우트 전문가들은 끝까지 문제점들을 주장하지 못한 채 급기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조직위 구성까지 계속해서 바뀌니 더 이상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졌다. 전문가들을 배제하지 않은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인 개최로 찬사 받았던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스카우트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언론이 움직인 건 잼버리가 시작된 이후였다. 잼버리가 시작되기 전 관심을 집중했다면 상황은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잼버리에 대한 관심은 엉뚱하게도 정치 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정부가 나섰다. 막대한 예산이 또다시 투입되었고, 기업뿐 아니라 학교, 사찰, 교회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서울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을 만나면 안쓰럽고 대견하다. 언론의 참혹한 새만큼 보도 때문에 온 국민이 대원들에게 미안함이 가득하듯 부디 좋은 기억만 안고 서울을 떠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스카우트 대원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는 미담. 약과를 하나씩 나눠주고 음료수를 사주며 소소하게 마음을 전했다는 이야기. SNS에는 이들을 응원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뒤늦게 스카우트 대원들의 다양한 경험들이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오천년 역사의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있는 그들의 환한 표정이 진정 반갑다.

스카우트 관계자에게 “이번을 계기로 달라지겠죠?” 라고 물었더니 “스카우트가 없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앞으로 이 잼버리를 끝까지 수습하는 일이 더 힘들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세계 잼버리에 실망하고 혼란을 겪었던 딸도 계속해서 잼버리를 이어가며 집을 나선다. 걸그룹과 스카우트 대원들이 참여하는 방송에도 출연하고, 새만금에서 만난 해외 친구들과 서울 투어를 함께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줄 거라며 남산의 전경이 예쁘게 찍힌 엽서도 구입했다. 

중3인 딸은 대원으로서의 참가는 마지막이지만 4년 후 다른 방식으로라도 세계 잼버리에 참여할 거라고 다짐한다. 세계 청소년들의 책임감, 모험심, 연대의식의 장. 어떤 극한 환경이라도 극복해가는 스카우트 정신은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그 매력을 충분히 안다. 물론 세계 잼버리가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그나마 큰 사고 없이 다양한 한국 문화를 알릴 적극적인 기회로 운영되고 있는 듯해서 다행이다.

세계 잼버리가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가운데 아름답게 마무리 되길 기대하며 딸에게 한마디 전한다.

“딸아. 넌 스카우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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