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양희은 에세이 '그럴 수 있어'

나를 토닥이고 응원해준 문장들
2023-09-21 15:46:46
아. 또 누구인가. 주변의 괴담들. 근거도 없이 용감하게도 지어낸다. 이해할 수 없다. 어이없는 이야기는 여기저기 유포되고. 오늘처럼 뜬금없이, 그 이야기는 다시 내게 들려온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누구인지 밝혀내야 할까. 짐작은 가지만…. 아니다. 신경 쓰지 말자. 복잡하게 살지 말자. 진실은 밝혀지는 거니까. 시간이 걸리는 것일 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되지. 그리고 혼자 한마디 내뱉는다. “나쁜 인간들.” 

머릿속에 맴도는 좋지 않은 기분을 떨쳐버리며 외친다. 쓸데없는 말들에 상처받지 말자. 스스로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가수 양희은님의 신간 에세이 '그럴 수 있어'가 떠올랐다. 

양희은의 에세이 '그럴 수 있어' 표지.

그렇게 서점으로 향했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함부로 말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단지 나에게 위로가 필요했다. 마음에 담긴 글들 줄도 긋고, 포스트잇도 붙이면서. 

어느새 마음은 평화로워졌다. 

양희은 특유의 따뜻하고 푸근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 있는 글귀들. 산책, 가족, 친구, 수다, 여행, 음식, 추억의 내용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화려할 수 있건만. 이미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행복이 뭐 별거있나”, “건강이 최고야”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글을 읽는 내내 그가 행복하고자 노력하며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그렇다. 행복도 느끼는 자의 것이다.

양희은님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몇 년 전 근무하던 공연장에서 기획사를 통해 그의 콘서트를 초청해 기획공연으로 진행했다. 서정적인 가사, 시대성을 담은 굴곡진 삶의 과정들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 노래는 내게 가슴에 닿은 울림이었다. 콘서트 제목은 봄날을 그리며 ‘봄, 눈부신 풀꽃’이 떠올라 그리 정했다. 게스트는 평소 따뜻한 목소리, 뮤지컬 배우로도 무대에 섰던 동생 양희경 배우. 우애 좋은 자매를 무대로 초청했으니 정겨운 시간은 당연했다. 관객들은 전석 매진으로 호응했다.

관객들에게 훌륭한 무대를 선사해준 그의 공연에서 내가 가장 감동받은 건 막이 오르기 전의 무대에서였다. 50여년 경력의 가수가 그리도 꼼꼼하게 무대 리허설을 진행하다니. 

대중가수들은 보통 공연 한두 시간 전 마이크 체크하는 정도로 리허설을 끝낸다. 보통 함께하는 스텝과 연주자들이 연습을 모두 마치고 최상의 준비가 완료 되었을 때 맨 마지막에 나타나 최종 리허설을 간단히 하는 가수도 많다. 가끔은 리허설 없이 공연하겠다는 가수도 있었다. 리허설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실수가 따르기 때문에 ‘리허설 없이 공연을 할 수 없음’을 계약서에 명시할 정도였다.

그런데 양희은님은 특별했다. 책에도 “오후 8시 공연이라고 해도 오전 11시부터 대기해야 하고, 오디오와 조명 맞추고, 전체적으로 공연하듯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본 공연이니, 사실 두 번 이상은 공연을 하는 셈이다. 이 시간 동안은 무언가를 할 엄두도 안 나고, 할 수도 없다”고 썼듯 집중해서 준비하는 모습은 존경이라는 단어를 불러왔다.

수많은 리허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객석에서 본 무대와 같은 모습으로 ‘엄마가 딸에게’를 부를 때는 나의 엄마와 나의 딸이 생각나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한곡 한곡 체크하는 그를 보며 “진정한 프로구나”를 되뇌었다. 관객들을 위한 그 존중이 가슴깊이 느껴졌다. 관객들이 감동할 수밖에 없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깐깐해 보이는 모습에 말 한마디 제대로 붙이지 못했는데. 사실 그 안에 뜨거운 열정과 관객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있었단 사실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진정성을 다할 때 그 깊이는 더해진다. 이후 나는 가수 양희은을 존경하는 진정한 팬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나 응원한다.

그리고 그에게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로 마음을 전한다. 

<< 양희은 선생님. 이제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행복을 느끼며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세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로의 인생에 자연스럽게 등장해 주는 것. 이것이 인연이라고 하셨지요. 선생님은 책을 통해 이렇게 또 저와 인연이 되어 주셨네요.

악성 괴담들을 만들어낸 인간들에게는 “다 자기 생긴 대로지, 뭐 더도 덜도 아니지. 그러라 그래”라고 말해주실 것 같아요. 그러면서 “우리 역시 바람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삶일 뿐! 결국 남은 건 마음을 나눈 기억이다. 마음과 마음이 닿았던 순간의 기억이 우리를 일으키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살맛나게 한다”며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라고 하시겠지요. 또 “결핍이야말로 가장 큰 에너지가 아닐까.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면 이제 올라와야지. 상처 없이 타인의 불행에 어찌 공감할 수 있겠는가”하면서 위로해 주실 것 같아요. >> 
 
그는 어린 시절 집 앞 느티나무가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다 들어주었듯,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날 때 나뭇잎이 샤샤샤- 흔들리면 그게 꼭 자신을 토닥거려 주고 박수 쳐주는 것 같다며 “내 등을 토닥여준 바람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노래가 그런 응원이 되길 바라며 나는 노래에 바람을 담는다”고 하였다. 

양희은님의 노래가, 또 그의 마음을 담은 책이 많은 이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나에게 처럼 말이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래 이해하자. 서로 다른 인생.

이제 난 그처럼 스스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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