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치열하게 살아왔던 걸 그룹은 우리의 표상… 뮤지컬 '시스터즈'

2023-11-16 11:42:07
'아이돌'로 데뷔하려면? 첫 관문은 연습생으로 소속사에 입문하는 것이다. 소속사 연습생이 되는 것도 오디션을 준비하는 ‘하늘의 별따기’ 과정이라 하니 보통실력으로는 어림없다. 이미 TV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눈물겹게 노력하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들을 보지 않았던가. 연습생이 된 이후 데뷔하기 위한 준비 과정은 더욱 혹독하다.

올해 초 BTS 멤버 RM이 스페인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가 큰 주목을 받았다. “K-POP의 눈부신 성공이 아티스트를 비인간화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개인을 위한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것이 K-POP을 빛나게 한다. 20대부터 30대까지 우리는 BTS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했다”고 답했다. 해외 언론에서 ‘비인간화’ 과정이라고까지 치부할 정도면 얼마나 혹독한 것인가. 그럼에도 최상의 무대를 위해서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일지도 모른다.

창작 뮤지컬 '시스터즈' 홍보 이미지.

수년간의 지독한 노력을 견뎌내야 하는 아이돌 준비생에게 노래와 춤, 작사, 작곡은 기본이다. 해외 활동을 위해 외국어를 배우고 비쥬얼을 돋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에 다이어트까지 철저한 관리는 받는다. 소속사는 이 관리 뿐 아니라 시장분석과 기획력으로 데뷔를 뒷받침한다. 아티스트의 실력과 소속사의 기획력이 조화를 이룰 때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시스템과 기획이 체계적이지 않았던 시절 ‘원조 아이돌’의 활동은 어땠을까?

최근 블랙핑크, 뉴진스, 아이브 등 걸 그룹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오직 실력만으로 한류의 시작을 이끌었던 과거 여성 그룹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의미 있게 풀어낸 창작 뮤지컬 '시스터즈'에서 말이다.

작품은 대중음악 100여년의 역사가 시작된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모인 최초의 걸 그룹 '저고리 시스터즈'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1939년, 전설적인 '조선악극단'의 단원들로 구성된 '저고리 시스터즈'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연락선은 떠난다’의 장세정 등이 주축이 됐다.

이들은 나라 잃은 아픔과 한에 복받치는 민중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 뮤지컬에서도 일제 치하 금기시 됐던 ‘아리랑~ 아리랑~’의 구슬픈 선율로 굴곡진 시절의 아픔을 뜨겁게 전한다. 당시는 한 곡 한 곡 절실하게 불러낸 노랫가락이 스타 시스템과 기획력보다 앞선 성공 요소였던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난영이 두 딸과 조카로 키워낸 '김시스터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던 '김시스터즈'다. “성공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말아라” “다른 가수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악기를 배우고 남자를 만나지 말아라”는 이난영의 당부를 지키며 미국으로 건너가 활약한 '김시스터즈'의 열정과 노력은 뮤지컬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시스터즈 역할 배우들도 무대에서 직접 클라리넷, 마림바 등을 연주했다. 그 자체로 감동의 전율이 느껴졌다.

최고의 가수였던 이난영은 최고의 소속사 대표이기도 했던 것이다. 낯선 나라에 적응하며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은 현지 관객들에게 감동으로 전달됐으리라. 이들은 당시 미국의 최고 TV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22번이나 출연할 만큼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녀들은 진정 K-POP의 텃밭을 확장해 놓은 주인공이었다.

이후 1960년대를 상징하는 '이시스터즈'가 등장한다. 미군 클럽에서 활동하던 그룹이다.

전쟁이 끝난 후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했고 대중음악도 다양한 추세로 확장되었다. 주한미군 클럽을 통해 미국의 대중문화와 팝 음악이 전해졌다. 미군을 상대로 한 산업이 활발하게 발전했고, 미군 부대 주변에는 미군 클럽과 민간인 클럽이 성업을 이뤘다. 이들은 음악인들에게 중요한 생계수단으로, 음악 진출 무대가 되어 주었다. 미군 부대 무대에 오르려면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거쳐야 했다. 그 만큼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아야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미8군 클럽 출신인 패티김, 최희준, 김상희, 정훈희, 송창식, 윤형주 그리고 조용필 등은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뮤지션들이다. 미군 클럽 무대에 선 우리 밴드와 가수들, 악단들은 미군을 위한 음악을 하며 역량을 축적했고 결국에는 우리 대중가요의 다양화와 질적 상승을 주도했다는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인터뷰가 겹쳐진다. 

이후 무대에서는 군인들에게 뜨거운 무대 열정을 선보인 '코리아 키튼지'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영상이 보였다. 태생부터 스타성이 잠재되어 있던 윤복희의 활동과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모습들을 되짚었다.

1970년대 신중현 프로듀서를 통해 데뷔한 일란성 쌍둥이 자매 '바니걸스'와 인순이의 데뷔 그룹이었던 '희자매'도 등장한다. 뮤지컬은 훗날 그룹에서 탈퇴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대를 장악하게 된 인순이의 삶에 집중하면서 ‘거위의 꿈’을 엔딩곡으로 막을 내린다. 척박한 시절, 대중음악의 길을 걸어왔던 모든 걸 그룹들을 위한 헌정곡 같은 잔향을 남기는 엔딩곡이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100여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엄청난 발전과 변화를 이뤘다. 사회적 현상과 당대의 문화를 대변한 우리 걸 그룹의 역사는 우리 대중 문화를 주도한 대중음악의 역사 그 자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준 대중음악은 이제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문화 강국 대한민국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대중음악의 흐름에 집중하며 K-POP 이전, 뿌리 깊은 나무의 깊이를 되짚듯 음악의 역사를 보여주었던 '시스터즈'는 우리의 음악적 자산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들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준 신시컴퍼니, 그리고 박칼린 연출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단다. 그녀들의 치열함이 우리 대중음악 발전의 깊은 뿌리가 되었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