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네덜란드, ‘반도체 동맹’ 공식화…“공급망 위기 돌파 기회”

양국 정상회담서 경제·안보·산업 협의체 신설 합의
윤 대통령, 외국 정상 첫 ASML 방문…이재용·최태원 동행
차세대 반도체 인력 양성 단계부터 협력
신종모 기자 2023-12-13 10:55:39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계기로 사실상 한국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동맹’이 공식화됐다. 

13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총리는 이날 정상회담을 열고 정상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과 뤼터 총리는 이날 반도체 동맹 구축에 따라 이를 실천하기 위한 경제·안보·산업 분야 양자 협의체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 앞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오른쪽)과 함께 기업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12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한·네덜란드 양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평시 각별한 협력을 도모하기로 했다”며 “위기 발생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반도체 공급망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함께 집행하고 이행해나가는 동맹관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차장은 “양국 공동성명에도 긴밀한 협의를 거쳐 ‘반도체 동맹’이란 용어를 직접 기입해 넣었다”고 설명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 반도체 동맹을 포함함으로써 국가 간 안보 협력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협력 강화의 목표와 의미, 방법 등을 구체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안보의 핵심 이익을 결정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한편 공급망 위기를 함께 돌파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양국은 외교 당국 간 연례 경제 안보 대화를 신설하기로 했다.

양국 산업 당국은 반도체 정책을 조율하기 위한 반도체 대화를 설치한다. 핵심 품목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바탕으로 한 공급망 협의체 구성도 추진한다.

대통령실은 “양국이 국가 간 외교관계에서 반도체 동맹을 명문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국빈 방문을 떠나기 전부터 국가안보실이 집중적으로 공동성명 문안에 대해 직접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며 “네덜란드도 깊은 고민 끝에 반도체 동맹을 공식 명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국빈 방문 전부터 네덜란드와의 반도체 협력 관계를 반도체 동맹 관계로 격상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미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윤 대통령은 12일 남동부 벨트호벤에 있는 ASML 본사를 방문했다. 

ASML은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다.

윤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함께 ASML을 찾아 EUV 장비 생산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윤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ASML ‘클린룸’에 들어가 2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차세대 EUV 장비 제조 과정을 직관했다.

네덜란드는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세계 최정상급 국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ASML의 장비는 주요 강대국들의 전략산업 및 방위사업의 성패와도 관련된 ‘전략물자’이자 대체 불가능한 희소품이기도 하다.

현재 삼성전자·TS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3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을 선도하고자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다. 

ASML이 윤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2나노미터 반도체 생산 장비를 최초로 대외 공개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TSMC와 2나노 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EUV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서다.

정부는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반도체 동맹’을 완성하려면 미국, 일본과 함께 네덜란드와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 동맹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원활한 장비 조달을 위한 활로를 뚫고 반도체 제조·생산뿐 아니라 설계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글로벌 협력 채널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양국 정부와 기업은 이 자리에서 3건의 협력 MOU를 체결했다. 삼성전자와 ASML은 내년부터 1조원 규모 공동 투자를 통해 국내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양국은 차세대 반도체 인력 양성 단계부터 협력할 방침이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네덜란드, 차세대 반도체 협력 강화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네덜란드 벨트호벤의 ASML 본사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반도체 기업인 간담회’에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과 제프리 반 리우웬 네덜란드 통상개발협력 장관이 양국 정상 임석 하에 ‘한·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신설 MOU’를 체결했다.

양국은 내년부터 오는 2028년까지 5년간 약 500명의 반도체 인력을 공동으로 양성할 계획이다.

반도체 전공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반도체 기업 연구진 등 양국에서 선발된 인력들을 네덜란드와 한국에 모이게 해 1주일간 현장 위주의 집중 교육 과정을 운영한다.

에인트호번공대를 중심으로 진행될 교육은 첨단 반도체 제조 및 반도체 기술 동향 명사 특강, 기업이 제시한 반도체 난제를 해결하는 팀 프로젝트 챌린지, ASML, NXP 등 네덜란드 첨단 반도체 기업 방문 등으로 구성된다.

교육 과정은 한국 측에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과 한국반도체운영협회가, 네덜란드 측에서는 에인트호번공대와 ASML 등이 맡아 운영한다.

양국은 먼저 내년 2월 한국 교육생 25명, 네덜란드 교육생 25명 등 50명을 선발해 네덜란드 현지에서 '1차 아카데미'를 여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한국의 학생과 현업 종사자들이 ASML 본사와 에인트호번공대가 제공하는 교육 기회를 얻어 EUV 노광장비 등 첨단 장비 운영 노하우를 체험하고 기술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SML과 한국 반도체 기업 간의 추가 협력 계획도 발표됐다.

우선 ASML과 삼성전자는 1조원을 공동 투자해 차세대 EUV 기반 초미세 공정을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R&D 센터’를 국내에 세우기 위한 MOU를 체결했다.

ASML이 반도체 제조 기업과 공동으로 해외에 반도체 제조 공정 개발을 위한 R&D 센터를 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SML은 오는 2025년까지 총 2400억원을 투자해 경기 화성에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인 ‘뉴 캠퍼스’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뉴 캠퍼스에는 EUV 노광장비 관련 부품 등의 재(再)제조센터와 첨단기술을 전수할 트레이닝 센터, 체험관 등이 들어선다.

아울러 ASML은 SK하이닉스와 ‘EUV용 수소 가스 재활용 기술 개발 MOU’도 체결됐다. 

EUV 노광장비 내부의 수소를 태우지 않고 재활용하면 전력 사용량을 20% 줄여 연간 165억원의 비용이 감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덕근 본부장은 “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과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 간 연대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와 기술 혁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양국이 이번에 합의한 한·네덜란드 반도체 대화 신설로 더욱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신종모 기자 jmshin@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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