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의료자문’이 보험금 지급 거절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약관상 보험금 지급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불필요한 진료'라는 의료자문 결과 하나로 뒤집어지는 사례가 속출합니다. 의료자문 담당 의사가 보험사로부터 자문료를 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공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에 본보는 의료자문 관련 제도에 내재한 허점을 파헤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스마트에프엔 = 김준하 기자 | 메리츠화재가 보험 계약자의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의료자문 결과서 내용을 임의로 '바꿔치기'한 정황이 확인됐다. 계약자 P씨가 세 차례에 걸쳐 의료자문 결과서를 받는 과정에서, 그 내용은 P씨 동의 없이 제3의 의료기관에 의한 새로운 소견으로 변경돼 있었다. 또한 거기엔 기존 의료자문 결과서에 있었던 '백내장 진단 가능'이란 평가가 '백내장 진단 적정성: 적절하지 않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는 백내장 수술로 인한 보험금을 받으려는 P씨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이에 보험금 지급 거절을 위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식 사문서 변조 의혹이 나온다. 메리츠화재는 "(결과서의 제3 의료기관명은) 잘못 표기된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피하기 위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의료자문 결과서 내용의 변경된 사실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았다.
의료자문 병원은 같은데 서로 상반된 결과···'사문서 변조' 의혹
메리츠화재와 실손의료보험 계약을 맺은 P씨. 2022년에 1000만원짜리 다초점 인공수정체(렌즈) 백내장 수술을 받은 뒤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 측은 의료자문을 거쳐야 한다며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 자문을 의뢰했다.
일산병원은 "백내장은 맞지만 수술의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메리츠화재는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P씨는 손해사정사와 함께 금융감독원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의료자문 서류를 다시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보험사가 다시 보낸 서류에는 자문기관이 '인제대 상계백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계약자 본인이 동의 없이 자문기관이 달라진 것이다.
소견 내용도 달라져 있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은 "검사 결과, 노안 수술이 주된 목적으로 보인다"며 "백내장 진단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백내장 진단 자체는 인정했던 일산병원의 소견과는 다른 결론이었다. '백내장 수술'이 모르는 사이 '노안 수술'로 둔갑한 셈이다.
P씨는 "왜 자문 병원이 달라졌냐"고 메리츠화재에 물었다. 그러자 메리츠화재는 아무런 설명 없이 병원명만 '일산병원'으로 고쳐서 같은 내용의 결과서를 발송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담당자의 표기 실수와 오발송으로 인한 것"이라며 "동일한 의료기관에서 동일한 내용으로 자문을 받았지만 내용이 잘못돼 다시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의도를 가지고 보험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한 것은 결코 아니며, 실수를 인지한 순간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절대로 계약자의 동의 없이 의료자문 기관을 다른 곳에서 할 수는 없다"면서 "만약 이렇게 된다면 내부통제상 큰 문제가 된다"고 덧붙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화재가 발송한 첫 번째 의료자문 결과서와 두세 번째 의료자문 결과서는 작성의 형식이 다르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첫 번째 의료자문 결과서는 의료자문을 대행하는 기관이 메리츠화재에 전달한 의료자문 결과서 원본이며, 이를 토대로 메리츠화재가 두세 번째 의료자문 결과서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표기는 실수로 볼 수 있으나, 서로 상반된 내용의 결과서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면 사문서 변조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령의사' 의료자문···현업 안과 의사조차 "신뢰성, 글쎄"
보험 계약자는 의료자문을 한 의사가 누군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P씨는 "보험사와 병원 모두 의사명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MG손해보험(현 예별손해보험)과 실손보험 계약을 맺은 A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A씨는 2022년에 1200만원짜리 다초점 렌즈 수술을 받고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가 지정한 의료자문 기관인 한양대구리병원과 강원대병원은 각각 "수술 필요성이 부족하다", "치료 필요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두 병원의 소견을 근거로 보험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A씨는 자문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문의했지만 "보험사에 물어보라", "우리 병원은 의료자문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답만 돌아왔다. 보험사 역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자문의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내가 가지도 않은 병원에서 서류만 보고 의료자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료업계에서도 보험업계에서 이뤄지는 의료자문에 대한 신뢰성에 물음표를 달았다. 한 안과 의사는 "(의료자문에 쓰이는) 이미지나 영상만으로 눈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를 통해 백내장 진단을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수정체의 모습을 세극등현미경(안과 진단 장비) 사진으로 온전히 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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