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51)전 세계 LCC 공통분모 ① 태동의 이유

김효정 기자 2023-04-19 14:09:20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전 세계 각 대륙에서 태어난 LCC의 흥망성쇠 역사를 살펴보면 일단 성공한 LCC가 나오고, 이후 이를 모방한 LCC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시장논리에 의해 자체 정리되고 나면 비로소 똘똘한 LCC 한두 회사가 해당 대륙을 지배하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이들이 태어난 배경과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성공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은 모두 ‘닮은꼴’이다. 엇비슷하였거나 아니면 아예 똑같은 고난과 역경을 겪고, 그 과정을 어렵사리 살아나오면서 이들은 매우 유사한 ‘혁신’을 낳았고 이는 하나의 ‘정신’으로 자리잡는 공통의 특징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태동한 전 세계 LCC의 효시 사우스웨스트항공, 그리고 이를 베낀 유럽의 라이언에어, 다시 이를 아시아에서 베낀 에어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의 LCC 대표주자 제주항공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 각 대륙 혹은 각 국가에서 만큼은 ‘원조’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각 대륙별 대표적으로 성공한 LCC에게서는 많은 공통분모가 있다. 따라서 후발 LCC들이 이 공통분모를 면밀히 탐구하면 지금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의 해답이 보인다. 그리고 향후 어떻게 따라가야 성공을 지속할 수 있을지 전략이 보인다. 공통분모를 제대로 따라가지 않고 지금 당장의 성공에 도취해 다른 샛길로 빠지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조심스럽게 엿볼 수도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전 세계 LCC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같은 궤도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각 대륙별로 성공한 LCC의 공통분모 가운데 ‘태동의 이유’를 먼저 탐구해보면 이들 항공사의 설립 동기에는 반드시 잠재시장이 존재했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즉 기존항공사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었다. 기존항공사들의 굳건한 항공시장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했던 새로운 신규 수요를 찾아낸 것이 가장 컸다. 성공한 LCC들은 기존항공사들에게서 시장의 파이를 빼앗아 온 것보다는 신규 수요 창출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그 전략이 통했다.

성공한 LCC가 항공사를 설립하던 당시의 항공시장 환경은 공통적으로 기존항공사의 독과점 폐해가 존재했고, 이로 인한 소비자의 유무형 손해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항공사 설립과 취항이라는 높은 벽을 넘고자 했던 초기 설립자들은 기존항공사와 경쟁하면서 기존항공사 고객을 빼앗아 오는 비즈니스가 아닌 철도와 자동차를 경쟁 대상으로 삼았다. 비싼 운임 탓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철도와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항공기로 끌어들이는 게 설립목적이었다. 즉, 기존항공사와 경쟁하는 게 아닌 신규 수요 창출 전략이었다.

하지만 성공한 LCC에서 자극을 받아 생겨난 후발 LCC들은 신규 수요 창출이라는 설립목적보다는 기존 LCC들에게서 시장파이를 빼앗아 와야 했기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래서 수많은 후발 LCC가 도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후발 LCC가 또다시 새로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또 다른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 쪼개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기존 시장을 더 이상 쪼개지 못하고 추가 신규 수요를 찾아내지 못한 후발 LCC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우스웨스트항공

사우스웨스트항공 창업의 발단은 미국 텍사스주 남부도시 샌안토니오에서 작은 항공서비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롤린 킹(Rollin King)이라는 남자가 ‘텍사스의 황금 3각지대를 새로운 항공회사로 공략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일종의 지역항공사인 ‘주내(州內) 항공사’ 모델을 생각한 것이 발단이었다. 1966년 당시 텍사스주의 휴스턴, 댈러스, 샌안토니오 3개 도시는 경제가 팽창하면서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었지만 서로 너무 떨어져 있고 버스나 승용차로 이동하기에는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항공료가 너무 비싸고 불편해서 이 3개 도시를 서로 이어주는 값이 싼 새로운 항공사가 생기면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이 설립됐다.

전 세계 LCC의 효시로 불리우는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단순히 기존항공사보다 싼 지역항공사를 설립한 것이었으나 취항 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방식의 항공사 운영을 창안해 냈고, 그 혁신적인 방법은 오늘날 전 세계 LCC의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라이언에어 창업의 발단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성공을 바로 옆 대륙에서 지켜본 아일랜드에서 태동했다. 아일랜드 국적의 유럽 대표 LCC가 된 라이언에어는 본사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소재 더블린공항에 두고 있으며, ‘The low cost airlines’을 표방하며 저운임을 무기로 순식간에 규모를 확대해 유럽의 LCC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984년 설립된 라이언에어는 1985년부터 14인승 소형항공기로 운항하다가 이후 46인승, 89인승 등으로 규모를 키웠다. 기존항공사보다 운임이 싸 경쟁력이 있었으나 차츰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1990년 초부터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다.

창업자 토니 라이언(Tony Ryan)은 회사를 살릴 구원투수로 마이클 케빈 오리어리(Michael Kevin O’Leary)를 CEO로 발탁하면서 전문경영인 시대를 열었다. 오리어리는 CEO 임명 직후 미국으로 날아가 사우스웨스트항공을 찾았다. 몇 날 며칠을 샅샅이 살펴본 후 사우스웨스트 방식을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유럽형 LCC로 변신했다. 이후 변두리 공항 취항, 기종 단일화, 기내식 폐지, 기내서비스 대폭 축소 등 LCC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도입했다. 그리고 사우스웨스트항공보다 더 강하고 더 치열하게 LCC 비즈니스 모델을 따르는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에어아시아 

에어아시아 창업은 토니 페르난데스(Tony Fernandes)에 의해 이루어졌다. 인도계 말레이시아 사람인 페르난데스는 영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다. 마지막 직장이었던 워너뮤직그룹의 워너말레이시아 CEO를 그만 두고 런던에서 지내던 2001년 2월 어느 날, 우연히 영국에서 급성장 중이었던 이지젯(Easy Jet) CEO 스텔리오스의 TV 인터뷰를 보게 됐다. 페르난데스는 스텔리오스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비행기와 공항 그리고 항공산업을 사랑한다’, ‘나는 마케팅과 홍보에 뛰어나다’, ‘아시아에는 LCC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항공사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렇듯 LCC는 미국에서 태동해서 유럽으로 옮아갔고 다시 아시아로 건너오는 데까지 약 30여년이 걸렸다. 아시아 LCC 시장에서는 에어아시아가 자타공인 최초이자 최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에어아시아와 제주항공의 항공사 추진시기가 동일시점이라는 점이다. 에어아시아 창업자 토니 페르난데스가 항공사 설립을 결심한 시기는 ‘2001년 2월 어느 날’이라고 하는데,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제주항공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론에 처음 밝힌 날 역시 ‘2001년 2월26일’이다. 페르난데스는 같은 해 여름에 회사를 만들어 구체화하고 9월9일에는 작은 기존항공사 에어아시아를 인수하는 계약까지 체결했고, 12월8일 최종 인수했다. 반면 제주도는 2001년 2월26일 신규 항공사 설립 검토를 공개 천명한 후 2002년 10월30일 ㈜제주지역항공사 설립계획을 확정했고, 2004년 6월29일에야 제주도의회의 승인을 받아 2005년 1월25일 애경그룹 계열사이자 민관 합작기업으로 제주항공이 설립되고 2006년 6월5일에야 취항할 수 있었다.

에어아시아가 항공사 설립 결심부터 취항까지 걸린 시간은 10개월에 불과했지만, 제주항공이 항공사 설립 검토부터 취항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5년 3개월이나 걸렸다. 그 때문인지 에어아시아는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최강자이자 글로벌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지만, 제주항공은 동북아시아 최강자 자리는 커녕 우리나라에서도 압도적인 최강자 자리가 아닌 도토리 키 재기 수준의 1위 자리를 근근이 지켜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제주항공 태동의 발단은 꽤 아이러니하다. 주연은 대한항공이고, 조연은 아시아나항공이다. 우리나라의 항공여행 대중화는 다른 대륙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됐다. 하지만 제주도는 섬 지역이어서 항공기 이용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빨랐고 항공기가 대중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항공사 설립 논의가 비교적 빨리 시작되었다. 제주지역항공사 설립의 발단은 늘 대한항공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사람의 비행기 이용이 늘면서 제주여행이 증가했다. 항공수요가 늘면서 대한항공 독점체제에서 아시아나항공이 가세하여 양대 항공사 체제가 되었지만 공급자 중심 시장으로 운임경쟁 없이 지속적으로 항공료가 인상되었다. 1999년에 이어 2001년 3월부터 대한항공이 국내선 항공요금을 평균 12.1% 인상했다. 제주도는 2001년 2월 초부터 범도민 항공요금 인상철회운동으로 들끓었다. 제주도는 2001년 2월26일 "항공사의 요금인상 횡포에 장기적으로 대처하고 안정적인 교통수단 확보를 위해 항공사 설립을 검토하겠다"고 처음 밝혔다. 당시 제주도가 처음 구상한 항공사는 LCC가 아니었다. 단지 기존항공사의 항공운임에 대항하는 즉, 운임이 싼 ‘제주도의 항공사’로서 제주를 기점으로 육지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작은 지역항공사였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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