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예술가의 비하인드 스토리 

신현석, 해금의 明暗
2023-06-15 06:00:03
손가락 살이 찢어져 터져나오는 핏물.
핏물은 해금줄을 타고 어느새 붉게 물들어.
고운 하늘은 어둠을 거쳐 또다시 새벽녘을 맞는다.
쓰리고 아픈 긴 시간들 속 퍼부었던 노력들은 
꿈꾸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루게 해 주었다.
그러나 준비없이 찾아온 시련. 
만끽했던 이룸의 휴유증은 감당할 수 없을 만치 크다.
높은 산은 골이 깊듯, 이 시기를 지나면
고통은 희망이 되어 한껏 성장하리.
한겨울에도 짙은 향기 내뿜는 동백꽃처럼 활짝 피어나리.


공연 포스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속, 곧 짙은 어둠이 몰려오는 듯 하건만 도로 한 가운데 건물의 형상과 자동차의 전조등 빛이 겹쳐진 한 남자의 사진. 쏟아지는 불빛에 그의 몸을 흐릿하게 내어주면서도, 뚫고 찌르고 있는 그 강한 빛들을 표정 없이 몸으로 견뎌낸다. 무거운 얼굴의 그를 보며 왜 이리 아파야 하나.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녹록치 않는 삶. 그럼에도 그는 말없이 걸어간다.

해금 연주가 신현석. 그는 이렇게 묵묵히 걸어 무대에 섰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하는 특별한 무대의 주인공으로. 공연명 조차 신현석의 <비하인드 스토리>. 지난 5월, 민속극장 풍류에서 막을 올렸다. 


해금 연주가 신현석의 '비하인드 스토리' 공연 포스터.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완벽해야 한다고 그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연주를 선보이고자 끝없이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완벽할 수 없음을 알고도 서야 하는 이 무대가 낯설고 두려웠을지 모른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국악계 명인, 작곡가, 연출가, 평론가 등등이 곳곳에 자리했다. 공연 리플렛 한 페이지 빼곡히 채운 ‘감사한 분들’ 이름이 이 예술가가 그동안 얼마만큼 노력하며 이 자리에 선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무대는 어두워지고 화면에 텍스트들이 타닥타닥 자판을 친다. 섬세한 농현, 힘과 깊이, 해금의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전통의 탄생, 국악의 미래, 국악인의 뿌리.. 이어서 그 단어들의 합본체 신현석의 반복되는 이름이 객석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암전 속 텍스트는 ‘갑자기,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해금과 가야금은 연주하는 부모님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보낸 일상이 나열된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첫 번째 무대는 신현석의 낮은 ‘구음’으로 열었다. 무(無)에서 유(有)로의 시작을 알리는 구음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탄생을 의미함과 동시에 음악가의 시작을 알리고 자유로움 속 희망의 이미지를 전달해 주는 듯 했다. 

 
무대가 정리되고 다시 화면이 밝아지면서 그의 유년기를 거쳐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들을 지켜봤다. 차곡차곡 쌓여진 국악 집안의 국악인. 화면에서처럼 어머니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가야금 산조 예능보유자 선영숙, 아버지는 국가무형문화재 구례향제줄풍류 보유자 신상철, 형은 앙상블시나위 대표 아쟁 연주자 신현식. 그는 뿌리부터 국악인, 과거와 미래를 이어나갈 차세대 주자였다. 

 
유치원이 끝나면 가야금을 가르치는 어머니 등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7살 때 윤진철 선생님께 판소리를 배운 것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때는 장구를 치고 중학교 때는 해금을 연주했다. 신현석이라는 예술가가 진정한 국악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주변 환경의 뒷받침과 노력들이 함께했는지 그는 최고의 선생님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음악을 익힌 특별하게 운이 좋은 예술인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연주자로서 화려한 이력을 쌓아갔다. KBS 국악대경연대상, 호남예술제 기악부분 금상, 서울국악예고 콩쿠르 기악부분 금상, 창원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 동아 콩쿠르 학생부 해금 부분 은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콩쿠르 관악 부분 1등,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기악부분 차상. 이런 수상 이력이 더해질 때 마다 얼마나 많은 기쁨과 기대가 함께 했을까.

 
그는 더 노력했다. 변화를 꿈꾸었다. ‘전통음악을 어떻게 창작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앉아서 연주하는 해금을 서서 연주하는 형태로 바꾸어 역동성을 표현하고, 해금 변주, 해금 병창의 장르화를 시도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20대 후반 주변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게 된다. 삶과 예술의 회의감으로 3년 동안 산공부를 선택했고, 이를 계기로 고독사한 영혼들을 달래주는 혼씻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곡, ‘해금앙상블 혼씻김’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음악의 길을 천천히 굳건하게 가고자 했다.

 
해금 연주자로 새로움을 더해가던 어느 날.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 연주자의 생명줄인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병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몸이라 생각하며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던 해금, 자신의 모든 것이라 믿었던 연주를 더 이상 할 수 없었던, 지독히도 힘든 현실을 마주해야 했을 그 심정.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모진 시간들은 자신과 함께했던 소중했던 사람들이 떠나가게 했고, 이별의 슬픔을 감당하며 절망 속에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처럼 어둠이 감싸 헤어나질 못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좌절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또다시 생각지 못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무대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깨달았다. 두려움이 앞서 밤새 고민해야 했던 이 무대는 그만큼의 값진 의미를 남겨 주었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소양을 갈고 닦아 화려한 꽃이 필 무렵,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예술적 삶에 역경을 맞았고, 말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아름다워 지기를 꿈꾸었던 예술가는 어느새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응원에 힘입어 다시 힘을 얻고 진정한 예술가의 삶은 더욱 확장하여 살아가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역량이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 무대. 그가 관객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에서 감동과 감격을 더했다.

 
“저는 이제 연주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저 자신을 받아들여도 여전히 해금 선율에 저의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더 많은 분야, 새로운 시도로 확장 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모든 것이 두렵고, 아직 부족한 것이 많지만 저는 여전히 결핍은 삶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새로운 희망을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꿈을 꾸어봅니다. 저는 희망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계속해서 꿈꿀 것입니다. 저는 다시 일어날 것이고 계속해서 해금 연주자의 영혼으로, 전통 음악인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를 응원한다. 결핍은 삶의 원천이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숙해진 그의 삶은 더욱 깊고 풍요로워 질 것이다. 진정 멋진 무대를 선사했다. 최고의 연주자였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연주는 뭉클했고, 먹먹했다. 

 
그럼에도 연주자로 활동하던 모습이 아쉬웠다. 그가 다시 연주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심청이의 정성이 더해져 봉사 아버지 심학규가 눈을 번쩍 뜬 것처럼, 그의 연주를 기다리는 관객들의 바램이 손 떨림 증상을 뚝 끊어주길 바란다. 

 
정성스럽게 마련된 이 무대에서 그의 무한한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악인인 온 가족이 함께한 커튼콜 공연에서 그의 환한 얼굴을 본다. 이제 웃을 일만 남았다. 그의 능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들도 한껏 모아지길 희망한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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