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믿음이 주는 무한한 신뢰.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천.

 
2023-06-22 15:02:17

"그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그 아이는 여기 오지 않았어.”

오랜 시간 소년원에서 봉사해 오신 지인의 한 마디에 마음 한 구석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믿어주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그가 저지른 과오가 일어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그는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소년원에 갔다는 것인가.

 
물론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여러 환경과 변수에 따라 수많은 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지인의 말을 들으며 ‘믿음’의 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막강함이 내제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너 믿어’라는 말이 건네는 무한한 신뢰, 때로는 가슴을 울리고, 힘든 상황들 묵묵히 견뎌 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 때로는 이 믿음의 힘이 삶을 살아가게 만들고 삶의 원천이 되기도 했던 여러 기억의 모습들이 눈앞을 지나쳤다.


믿음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로서,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사랑‧의뢰심을 갖는 일’이다. 성경에서는 오직 ‘믿음’을 통해 하느님과 올바를 관계를 가지게 되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불가에서는 ‘이 세상에서 믿음이 으뜸가는 재산’이라고도 했다.

신철作  기억풀이_DATE. Acrylic on canvas. 2023


 
결국 사회는 믿음으로 쌓은 신뢰가 모여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역할은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된다. 잘못한 믿음은 사회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처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다른 그 무엇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된다.

이런 ‘믿음’의 힘과 의미를 알고 계셨던 지인은 오랜 시간 소년원뿐 아니라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을 만나 상담하는 봉사활동을 하였고, 그 때 알게 된 안타까운 사연의 청소년을 아들로 삼기도 했다. 그에게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따뜻한 어머니가 되어 주셨다.

 
이 청년은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여 직장을 얻고, 몇 년 전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혼주석에는 앉은 지인은 여느 신랑의 어머니처럼 곱게 한복을 입고 아들을 챙기셨다. 결혼식에 참석한 나의 마음도 뭉클함으로 가득 찼고, 믿음을 주는 조건 없는 신뢰가 인생을 변화될 수 있도록 하는 원천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 지인은 해외로 삶의 공간을 바꾸었을 때에도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작은 아들로 삼았다. 작은 아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새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믿음과 신뢰가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내 안에 자리한 이 믿음의 화두는 요즘 나를 짓누르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놀라게 한 20살 초반 여성이 떠오르는 탓이다. 과외 교사를 찾는다고 속여 또래 젊은이에게 접근해 살해한 살인 피의자다.

 
이 여성의 신상과 범행 배경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누리꾼들이 ‘은둔형 외톨이’로 몰아가자 일부 전문가는 그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고 반박했고,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자폐증 성향이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자 섣불리 상태를 규정지으면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살해 수법과 동기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끔찍한 일이다. 물론 나 역시 그 피의자를 조금이라도 동정하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지인의 말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피의자의 고교 동창들은 그를 간식도 혼자 먹었던 친구로 기억했다. 이렇다 할 존재감도 없던 동창생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감이 없었다던 그 시절, 주변 친구들이 그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따뜻한 벗이 되어 함께 어울렸다면 어땠을까? 친구들과 함께 간식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었다면? 상담자가 되어 줄 어른이 있었다면? 사람들과 교류하며 인간과의 ‘신뢰’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래도 그렇게 고립되었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살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밀려왔다.


누군가 긍정적이고 강력한 믿음을 주었다면 그런 잔인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인간은 믿음으로 서로 신뢰를 쌓고 관계를 형성할 할 때 그런 신뢰를 주는 사람의 역할은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


지금이라도 주변을 둘러보자. 주변에 나의 믿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 인간이 주는 신뢰와 믿음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의 기회를 만든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아니다. 그 만큼 그 믿음의 가치는 더 소중한 것일 게다. 


삶에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무엇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가 된다. 
우리, 누군가의 특별한 의미가 되자. 함께하는 따뜻한 삶을 위해.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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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주
    김민주 2023-07-14 12:55:38
    좋은 글 잘봤습니다..앞으로도 훌륭한 글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조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