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 기만 '슈링크플레이션'은 답이 아니다

홍선혜 기자 2023-11-20 10:08:13
‘슈링크플레이션’. 영국의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을 통해 파생된 용어로 줄어들다는 의미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즉 기업들이 소비자가 가격인상을 체감하지 못하게끔 제품 가격은 동결하는 대신 용량이나 품질을 낮춰 판매하는 전략을 일컫는다. 최근 경기가 침제 되고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유통업계가 이 같은 마케팅 수법을 활용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논란이 거세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가격인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제품가격을 올리는 효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물가인상 자제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꼼수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기업들의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자유 경쟁 시장에서 정부가 과도하게 참견하는 것으로 느낄 수 밖에 없다. 정부는 기업에게 가격 인상 자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을 올리는 업체들은 하나같이 원자재 값을 더 이상 떠안을 수 없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가가 오르면 원재료 값도 덩달아 오르는 것. 어쩌면 당연한 구조다. 

슈링크플레이션 이미지. 

그렇다면 왜 일부 식품업체들은 공식적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슈링크플레이션을 선택해야 했을까.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100~200원만 올라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식품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러한 분위기에 정부의 두더지 잡기 식 압박까지 더 해지니 어쩔 수 없이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용량을 줄여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속임'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장기간으로 해당 기업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경우 다시 복구하기 까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최근 슈링크플레이션 수법을 이용한 식품업체는 풀무원, 롯데웰푸드, 농심 등이 있다. 풀무원은 5개가 들어있던 핫도그를 4개로 줄였고 롯데웰푸드는 12개가 들어있던 카스타드 제품을 10개로 줄였으며, 농심의 오징어칩, 양파링 역시 용량이 적어졌다. 문제는 이보다 더 많은 식품업체들이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제품의 양을 줄였다는 것이다.

이들 업체는 용량을 줄인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사실 불법도 아니니 공개할 이유도 없지만 적어도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주 고객인 만큼 알권리는 있다.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면 양심이 찔리듯, 기업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소비자에게 솔직하지 못한 행위는 삼가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법안을 제시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슈링크플레이션을 제재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책을 내놓거나,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 체인 마켓 까르푸의 경우 지난 9월부터 용량이 작아진 제품에는 소비자들이 쉽게 알 수 있게끔 '슈링크플레이션'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며 브라질에서는 이미 2021년부터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법을 적용하고 있다. 식품업계가 제품 용량을 변경할 경우 용량 감소율과 변경 수치를 180일 동안 포장지에 눈에 띌 정도로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는 법이다.

홍선혜 기자 sunred@smartf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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