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하 기자
김준하 기자.

올해 초 한 은행의 해외법인에서 발생한 수십억원대 금융사고가 뒤늦게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 은행 홈페이지 어디에도 관련 공시는 없었다. 이유를 묻자 "해외 현지법인은 법령상 공시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불법 여부를 떠나 투자자와 고객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는 분명 아니었다. 대형 금융사고가 벌어졌는데 '국경 밖의 일'이라며 숨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관련 법령에 허점이 있었다. 은행법 제34조3은 국외현지법인의 금융사고 내부통제 기준 준수를 명시하긴 하나, 정작 공시 의무대상에 해외법인을 명확히 포함하는 문구는 없다. 현지법인에는 금융당국의 검사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간 은행들은 이 지점을 파고들어 해외법인 사고를 공시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런데 어떤 바보가 굳이 악재성 정보를 공시하겠나.

해외법인 사고는 올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해외 사고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금융당국은 공시를 회피하는 은행 관행을 사실상 묵인해 왔다.

공시는 시장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기본 장치다. 해외법인 리스크는 본사 건전성과 신용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간 현지의 일이라며, 불법은 아니라며, 공시를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게다가 인구 절벽과 내수 포화의 한계 속에서 은행들은 해외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해외사업 영토가 넓어지는 만큼 현지에서의 각종 리스크는 증대할 것이다. 반드시 더 엄격한 공시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단순한 지시나 권고로는 부족하다. 은행이 미공시를 정당화할 여지를 차단하려면 법령을 손봐야 한다. 은행법과 시행령에 '국외 해외법인'의 사고를 명시적으로 공시 의무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이렇게 해야 금융당국의 수장이 교체되거나 정권이 바뀌어도 공시의 일관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금융사고에 국경은 없다. 수십억원의 손실은 어디서 발생했든 주주와 고객의 신뢰에 상처를 낸다. '해외법인이기 때문에'라는 꼬리 자르기는 없어야 한다. 관련 법령과 규정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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