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돈 달라는 농민 vs 경영주만 주겠다는 지자체...청년농들의 심경은?

농업 현장 목소리 들어보니...경영주 농민수당, 찬반 엇갈려
박찬식 기자 2019-10-18 09:27:05
사진=2020년부터 농민수당 지급 계획을 밝힌 지자체 홍보물 이미지/ 제공=안성시
사진=2020년부터 농민수당 지급 계획을 밝힌 지자체 홍보물 이미지/ 제공=안성시

농어민 공익수당(농민수당) 조례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최저 수익을 보장해달라'는 농민들의 전국적 서명 운동에 각 지자체는 농민수당 조례를 속속 의결시키고 있지만, 지급 대상이 '특정 농업인'으로 규정돼 있어 되려 반발을 사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최초로 '농어민 공익수당' 관련 조례를 의결시킨 전라남도는 수당 지급 대상을 1년 이상 전남에 주소를 둔 농어업인, 경영정보를 등록한 '경영주'로 규정하고 있다. 해남군, 가진군, 전북 고창군, 경북 봉화군 등 시·군 단위에서도 지급 범주를 경영주로 한정하는 농민수당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각 지자체들이 농민수당 지급 대상을 '경영주'로 제한한 이유는 재정적 부담 때문이다. 농민으로 규정할 경우 지급 범주가 넓어져 매해 수천억 원의 예산이 지출된다. 이에 지급 주체를 농가 단위로 한정, 지출액을 줄이겠다는 예산 전략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농민수당 지급 대상을 경영주로 한정하게 되면 여성 농업인들은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 농민들이 보통 2선의 위치에서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혜택 수령자는 일부에 불과할 전망이다.

실제 농업인들은 각 지자체의 농민수당 정책에 대해 어떤 소견을 품고 있을까. <스마트에프엔>에서는 지난 15일 제주 한림 캔싱턴 리조트레서 진행된 '2019 후계농(후계농업경영인 줄임) 영농 교육' 현장을 방문해 교육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농업경영 2선도 엄연한 농업인..."농민수당 지급 범주 넓혀야"

"농업에 종사한 지만 15년, 경영선에 뛰어든 지는 벌써 2년차에요. 그런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날 현장에서 만난 여성 후계농 이모(38·익명요구) 씨. 그는 각 지자체의 농민수당 정책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눈시울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농민수당 지급대상을 농민이 아닌 '경영체(농지원부 보유)'로 규정하는 정책 흐름이 물결처럼 번지고 있어서다. 지급 대상이 경영체로 한정될 경우 경영 2선인 이씨는 수당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그는 "최근 한농연제주도연합회, 제주농업인단체협의회, 제주지역 농민단체 등이 제주농민수당 주민발의 조례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여성 농업인들의 입장도 고려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농가라는 이름 뒤에서 2선의 자격만 주어진 여성들은 지급 액수 문제를 넘어 수당을 받을 수 조차 없는 실정"이라며 "여성들도 농업의 주체로서 헌신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지난 15일 창업농·후계농업경영인 등 3인이 농민수당에 대한 소견을 밝히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송명규·이모 후계농, 한승근 창업농
지난 15일 창업농·후계농업경영인 등 3인이 농민수당에 대한 소견을 밝히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송명규·이모 후계농, 한승근 창업농

다른 농업인들도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서귀포시에서 감귤농장을 운영 중인 후계농 송명규 씨는 “일각에서는 월 10~20만 원에 불과하는 정책 자금(농민수당)에 너무 목 메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농업은 산업 특성상 장기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월 10만 원씩 지원받을 경우 1년이면 120만 원, 10년이면 1200만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업은 매해 작황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고정소득이라는 개념이 없다”며 “농민들이 농민수당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그럼에도 여성 농업인들이 지원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고 있다는 것에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여성 농업인들도 우리나라 농업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인력”이라며 “지원 대상을 농민으로 바꾸되, 재정적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실제 농업에 종사 중인 자를 면밀히 파악해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승근 창업농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농가 경영 일선에 뛰어들기 어려운 이유를 짚기도 했다. 그는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농지를 물려 받는 승계농의 경우 남성 위주의 승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그 외 부부 단위 농장을 꾸릴 때에도 영업, 노무 관련에 능한 남편 중심의 경영체계가 뿌리 깊게 내려 있다”고 언급했다.

덧붙여 “지자체들의 농민수당 지원 대상을 살펴보면 이것이 정말 농민을 위한 수당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다”며 “정부는 농민수당이라는 이름 하에 공정한 수당을 지급하거나 경영주 수당이라고 명칭을 바꿀 것인지 둘 중 하나의 방안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주→농민으로 지급대상 변경?...위장취업 막을 길 없어

경영주가 아닌 사람들을 농민수당 대상에 포함시키게 되면 무의미한 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시각도 나온다. 각 지자체의 농민들을 위한 예산이 각종 편법과 꼼수 등으로 농가에 위장 취업한 인력들에게 헛되이 쓰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 후계농 한모(38) 씨는 "경영주, 농가 단위로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각 지자체의 의결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농업 종사자로 대상을 확대할 경우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발생한다. 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막을 생각인가?"라고 반문했다.

후계농업경영인 한모(38) 씨가 최근 불 붙은 농민수당이 농업인 전체에 돌아가선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후계농업경영인 한모(38) 씨가 최근 불 붙은 농민수당이 농업인 전체에 돌아가선 안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씨에 따르면 국내 농업인(농업법인)은 각종 국고보조와 세금감면 혜택을 부여받고 있다. 농업인 판단 기준은 실제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명서인 '농지원부'다. 한씨는 "정부의 농업인 세금감면 혜택 때문에 실제 토지주들은 농민과 구두계약(간의계약)을 진행, 토지 임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본인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농업 관련 혜택은 누리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농업인 모두에게 지급되는 농민수당 역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급 대상을 넓힐 것이 아니라 경영주 등록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임대차 계약 문제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농업인과 농민수당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그는 여성 농업인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부장적 문화가 사그라들면서 여성 농업 경영주들도 상당수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모로부터 농업을 승계받을 때나 나올 법한 얘기일 뿐, 그외 여성이라고 하여 경영 일선에 뛰어들기 어렵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찬식 기자 park@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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