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은 친절

환상의 나라, 도쿄 디즈니랜드의 추억
2023-07-20 13:26:54
“한국에는 잘 돌아가셨나요? 이번 일본여행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되면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일본에서의 반가운 카톡메시지를 읽는 순간! 

아찔했던 며칠 전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초등학생 아들과 단둘이 떠난 도쿄 여행에서의 일이다. 하루 6만 명이 찾는다는 디즈니랜드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도쿄 디즈니랜드


최근 가장 ‘핫’ 하다는 어트랙션 ‘미녀와 야수’ 앞에서 긴 줄을 서다가 잠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것. 초등학생인 아들이 한 블록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사고 이곳을 찾지 못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설마, 찾아오겠지. 늦어지는 거겠지.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로밍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아 아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도 무용지물. 서있던 줄에서 나와 도쿄의 7월 땡볕을 맞으며 두리번, 두리번. 여기 어디쯤 있을 거야. 곧 이곳으로 올 거야.

하지만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아들을 닮은 아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단 주위에 있던 직원에게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알리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이는 10살, 오렌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었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고. 직원은 침작하게 나를 안정시켰지만 초조한 마음에 가만 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직원은 그런 나에게 “이곳을 벗어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더니 연신 무전을 보냈다. 잠시 후 어트랙션 주변 직원들은 아들을 보지 못했다는 회신이 왔다. 초조함을 넘어 두려움이 엄습했다.

더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국인 직원이 있는지, 있다면 이곳으로 와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뜨거운 햇볕 열기 아래에서 강렬한 열을 내뿜고 있는 정오. 아들은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을까. 외국 놀이공원에 혼자 남은 자신이 두렵지는 않을까.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빨리 찾아야 한다.

드디어 한국인 여성 직원이 도착했다. 그녀에게 애타는 마음을 전했더니 이리저리 연락을 했다. 아이의 나이와 옷차림 등을 설명하고 미아보호소에도 연락을 했다. 한 참 통화를 끝낸 그녀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직원이 데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이곳으로 오기로 했다”고 전했다. ‘찾았다’가 아니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긴장이 풀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오렌지색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아이가 멀리서 보였다. 아들이다. 찾았다. 여전히 가슴은 콩닥콩닥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다행이 아들은 울지 않고 있었다. 눈물 많은 아들이 펑펑 울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많이 컸네 생각하는 순간, 아들은 나에게 달려들어 꼭 안더니 펑펑 운다. 한참을 목 놓아 운다. 함께 눈물이 쏟아지는데 이빨을 꼭 깨물었다. 별거 아니다. 찾았으니까.

아들을 보호하고 있었던 직원에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지.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를 외쳤다. 따뜻하게 웃고 있는 직원의 모습은 친절 그 자체였다.

직원은 아들의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다며 자신에게 쿠폰이 있으니 매장에 가서 다시 사주겠다고 했다. 미키마우스 모양의 도톰한 오렌지 맛 아이스크림이 더 시원하고 달콤하게 느껴졌다.

한국인 직원은 디즈니랜드 4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메모지에 행운의 글을 적어 주었고, 아이스크림을 다 먹기를 기다리더니 2시간은 줄을 서야하는 ‘미녀와 야수’ 어트랙션을 바로 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어트랙션 입구에 들어서니 왠지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은 듯, 좋지 않은 기억은 어느새 사라지고 직원들의 친절과 배려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트랙션에 탑승한 순간, 마침내 아름다운 궁전에 도달한 듯 환상의 기분을 만끽했다. 아들은 “동화나라에 온 것 같아” 라고 외친다. 당황스럽고 초초했던 기분을 ‘한방’에 날려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쩜 이리도 잘 만들어 놓았나‘, ‘이 곳 디즈니랜드에서는 좋은 기억만 갖고 갈 수 있겠다.’ 

평소 바쁜 엄마가 보상해준다는 의미로 큰 맘 먹고 아들과 단 둘이 떠난 해외여행. 의도와 달리 아들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일을 겪을 뻔 했지만, 직원들의 친절에 마음을 풀고 다시 처음의 설렘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이 되었다. 

일본 여행에서 디즈니랜드 직원들의 친절함은 기분 좋은 추억과 행복을 남겼고, 문화재단에서 근무하는 나에게도 직원들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한국인 직원과는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직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함께 사진도 찍고 “한국에는 언제 오시냐”고 물었더니 2주 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들어가는 거라 자신도 기대된다고 했다.

나는 메모지를 꺼내 연락처를 전달해 주었다. 한국에 오면 밥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연락이 진짜 연락이 왔으니 너무나 반가운 것은 당연. 한국에서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진심을 담은 그녀의 친절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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