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주의 문화인사이드] 불행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더 불행한 게 있을까

우리 모두는 결핍의 대상
이것이 우리가 서로의 수호천사가 될 수 있는 이유

-이현지 작가의 동화 '도둑의 수호천사'
2023-07-27 13:20:01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흥미롭다. 최근 문학나눔 도서보급 사업인 ‘라이팅 온 북스’의 북토크 진행을 맡아 특별한 아동문학서를 만났다. ‘라이팅 온 북스’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해 생애 첫 책을 발간하는 문학도서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문학 분야 창작 여건 조성과 문학 출판 시장 활성화를 견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2023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일환으로 열린 '라이팅 온 북스'의 북토크 현장에 마련된 홍보 부스.


북 토크를 준비하며 ‘어떤 작가일까’라는 설레임으로 미리 책을 구입해 여유롭게 읽어 내려갔다. 책은 이현지 작가의 '도둑의 수호천사'. 아동들을 위한 도서라 읽기 쉬웠고, 무엇보다 현재의 시대적 모습들을 현실성 있게 반영해 집중도 잘 됐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땐, 금방 읽혀버린 글들이 너무 아쉬웠을 정도로 어른인 내가 더 많은 글자들 속에 파묻히고 싶은 동화였다. 두텁지 않은 글 속에서 스펙터클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긴장감이 계속되었고, 마음을 읽는 문장은 격한 감정에 숨가쁜 오열을 불러왔다.

'도둑의 수호천사'는 주인공 한나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비롯된다. 한나는 사건 당일 수학 숙제를 하지 않아 학교에 남아 문제를 풀다가 방과 후 수업까지 늦게 되고, 곰인형을 만들다 약속 시간에 늦어서 엄마를 교통사고 장소에 있게 했다는 죄책감을 갖는다. 하지만 가해자가 음주 운전자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 큰 죄를 짓고도 단 4년의 형을 살고 석방된다는 것을 알고는 엄청난 상실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억울한 마음에 한나는 물건을 훔치기 시작한다. 갖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물건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피해자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서다. 한나는 터져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인정 사정 없이 거칠게 부딪침으로 살아간다.

 “음주운전으로 엄마를 죽인 사람이 고작 4년 형을 받는데, 이 물건 하나 훔치는 게 무슨 죄가 된다고?” 어린 나이에 사회의 부조리를 학습하게 된 것이다.

한나 주변의 사람들은 한나의 결핍을 메워주려고 노력한다. 한나를 자신의 딸처럼 사랑으로 키우고 보살피는 이모, 한나가 훔쳐간 틴트를 선물이라며 용서하고 이해하는 담임 선생님. 집 나온 한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지혜 언니. 학교폭력위원회 신청을 취소하도록 엄마를 설득한 친구 주연이. 엇갈리는 삶 속에서 진심 어린 사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아줌마.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나를 돌본다. 모두가 한나의 수호천사였다. 긴 방황 끝 에 한나는 다시 올바른 성장의 길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한나의 수호천사들 덕분이다.

글을 읽다보면 ‘과연 한나만이 결핍의 대상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나의 결핍을 매워주는 주변의 모든 이들이, 힘겨운 삶들을 서로 돌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결핍의 대상들이다. 그리고 그 결핍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수호천사인 것이다.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현실감 있는 작품을 써내려간 이현지 작가는 북토크를 통해 “인생의 불행은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 온다”며 “성인이 되어서 찾아온 불행은 세상물정 알아가며 맞서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좀 더 있지만, 어린 시기에 갑작스럽게 닥치는 불행들에 아이들은 완전히 생살로 노출이 되기에 상처가 더 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도 불행은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 나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다.

하지만 내 주위를 둘러싼 수호천사들이 함께 한다면 분명 희망은 내 편이다. 최근 신문을 떠들썩하게 한 신림역 칼부림 흉기 난동범은 조사 과정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불행은 불행을 키운다. 불행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더 불행한 게 있을까.

삶을 되짚어보면 살만한 이유가 있다. 살만한 가치도 충분하다. 살만한 이유와 가치를 찾아 가는 사람들을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결핍의 대상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의 수호천사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다.

글·조현주 박사(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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