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86)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2세대 항공사 ③

2023-11-15 05:58: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K-LCC 역사에서 이른 시기의 ‘대한항공의 LCC 시장 진출’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그 과정에서 자사가 만드는 신설 K-LCC는 처음부터 국내선이 아닌 중국과 동남아시아 노선을 운항하겠다는 계획 역시 K-LCC 역사에 변곡점이 되었다.

대한항공은 공식 발표를 통해 2007년 12월 설립될 에어코리아는 2008년 1월 건설교통부에 면허를 신청, ‘국제선만 운항하는 저가항공사’를 2008년 5월 취항시키겠다고 했다. 이 같은 대한항공 자회사 에어코리아의 국제선 취항시기는 항공당국의 “신생항공사가 국제선을 띄우려면 국내선 운항경험을 3년가량 쌓아야 한다”는 규정과 비교하면 상당한 모순이 있었다. 에어코리아의 국제선 운항시점은 2011년 5월이후에나 가능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한항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생항공사의 성급한 국제선 취항은 기존항공사들의 항공안전 국제등급에 악영향을 준다며 막은 게 그들이었던 지라 자사가 설립하는 항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마저 드러냈다. 그만큼 대한항공 자회사의 국제선 진출 추진일정은 막무가내였다.

경쟁업체들의 반응은 묘한 대조를 보였다. 제주항공은 의외로 반기는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시장상황과 경쟁구도가 묘하게 엇갈렸다. 에어코리아의 다소 막무가내식 국제선 취항 추진이 오히려 제주항공에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에어코리아의 국제선 노선면허 취득과정이 제주항공의 국제선 조기 운항이라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주항공은 국제선과 국내선 항공면허를 모두 취득한 상태였다. 다만 국제선 '운항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에어코리아가 대한항공의 예정된 수순대로 국제선에 취항하게 될 경우 제주항공과 형평성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제주항공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제주항공은 “최근 정부가 국내선 취항 3년이 흘러야 국제선 취항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어 기존 K-LCC 업체에 소급 적용하려 하고 있다”면서 “대한항공의 자회사가 만약 국제선에 쉽게 취항하게 되면 기존 K-LCC의 국제선 진출에 유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으로 에어코리아가 신규 취항하겠다고 발표한 중국, 동남아 노선은 모두 아시아나항공의 주력 노선이었다. 마치 대한항공이 자회사를 내세워 아시아나항공의 텃밭을 공략하겠다고 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 같은 탓에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의 K-LCC 시장 참여부터 비판적인 논평을 내놓은 데 이어 “에어코리아가 신생항공사인데 대한항공 출자만으로 대한항공의 운항경험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국내선 운항경험을 거쳐 검증된 신규 항공사에게만 국제선 운항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항공은 항공당국의 지침과 아시아나항공의 노골적인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에어코리아는 대한항공의 정비, 운항 경험을 모두 이어받기 때문에 다른 K-LCC와 달리 곧바로 국제선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항공은 정부측에 “3년 기준을 고집하지 말고 안전성을 면밀히 따져 조건이 충족되는 항공사에는 국제선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다시 말해, 대한항공의 자회사에게는 굳이 3년 기준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이 같은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불과 이틀 후인 2007년 11월28일 에어코리아의 국제선 조기 취항 계획은 좌절됐다. 건설교통부는 이날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을 서둘러 수정 발표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신규 항공사는 국내선에서 2년 이상, 2만 편 이상을 운항하면서 사망사고가 없어야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할 수 있으며,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1년 이상 하면서 사망사고가 없어야 국제선 정기 운항을 허용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국내선 3년 이상에서 2년 이상으로 1년 줄었고, 그 대신 2만 편 이상이라는 운항횟수가 추가됐다. 또한 항공사끼리 합병하는 경우에는 합병 후 존속하는 항공사가 기존항공사의 운항경험을 승계하며, 항공사가 분할되는 경우에는 기존항공사의 자산과 인력을 50% 넘게 승계하는 항공사가 운항경험을 승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기존항공사가 출자해서 항공사를 새로 설립하는 경우에는 신규 항공사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이는 신생항공사와 마찬가지로 기존항공사가 출자한 항공사의 경우에도 형평성 차원에서 국내선을 일정 기간 취항해야 국제선을 운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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