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82)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1세대 항공사 ⑩

2023-10-18 06:20:03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K-LCC 1세대 항공사들은 취항 전후 여러가지 대내외 사정과 이유들로 인해 숱한 난관과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아 취항 1주년을 맞은 제주항공은 탑승률이 차츰 높아지면서 안정화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을 추진하기에는 걸림돌도 많았다. 출범 첫돌을 맞을 즈음 제주항공이 안고 있던 ‘10대 고민’은 K-LCC 1세대의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지는 항공사(史)적 의의를 지닌다.

1. 같은 LCC라도 격이 다른데 같은 범주로 묶인다

제주항공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정기운송사업자 허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항공기 보유대수도 제주항공은 취항 1년차부터 5대로 시작한 반면 한성항공은 1대로 운항했다. 그리고 중고 비행기를 리스로 들여온 게 아니라 모두 현금을 주고 산 자사 소유의 신규 제작 비행기였다. 제주항공은 한성항공과의 차이를 몰라주고 같은 범주로 묶이는 게 불만이었다. 부정기운송사업자로 허가를 받은 한성항공과는 분명히 격이 다른데 소비자들은 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2. 제주도만 가는 줄 안다

제주항공이라는 이름의 상징성 때문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흔한 착각이 제주도만 가는 항공사인줄 안다는 것이었다. 주력노선이 김포~제주, 부산~제주이긴 했지만 김포~부산과 김포~양양 등 내륙노선도 운항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해공항에서 김포행 비행기를 제주행으로 착각하고 잘못 탑승하는 승객이 종종 있어서 지상직원들이 진을 빼야 했다. 제주항공은 이름 그대로 제주도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의외로 많았다. 때문에 향후 국제선에 운항하게 되면 노선홍보에 어려움이 예상됐다. 국제선까지 운항하려는 항공사 치고는 너무 지역적인 이름이 고민이었다.

3. 운임은 싸지만 서비스 눈높이는 여전하다

운임이 싼 만큼 서비스의 수준도 낮춰서 원가를 줄이는 게 상식이지만 승객의 요구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럼 비싼 비행기 타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제주항공은 서비스 수준을 계속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 수준이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 기존항공사를 이용했던 고객의 눈높이에 LCC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게 무척 힘겨웠다.

4. 결항률이 높아 불안한 항공사로 취급되었다

제주항공은 2006년 6월5일 취항해 연말까지 항공기 5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때문에 보유항공기는 1대부터 5대까지 매월 도입되었다. 이로 인해 1년차 전체결항률은 13%로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잔고장에 대응할 수 있는 예비항공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취항 1년동안 대체항공기 없이 운항하는 바람에 '제주항공 또 결항'이라는 뉴스가 유난히 많았다.

5. 프로펠러기라고 무시한다

제주항공이 초기에 도입한 항공기는 74인승 터보프롭 Q400 기종이었다. 제트엔진과 프로펠러엔진이 모두 달려있었다. 그러나 프로펠러가 달려있다는 이유로 프로펠러기로 불렸다. ‘구식비행기’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터보프롭 Q400 기종은 유사시 제트엔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프로펠러를 이용한 활공이 가능해 더 안전한 기종이었다.

6. 강원도와 제주도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였다

김포~양양 노선을 하루 2회 운항했는데, 이를 놓고 속앓이를 했다. 승용차로 2시간 반이면 되는 서울에서 양양까지 거리를 굳이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 비행기로 가려는 승객이 거의 없었다. 이 노선에서 연간 20억원가량 적자가 발생했다. 제주도는 쓸데없는 노선에 취항해서 적자를 내고 있다고 비난했고, 강원도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 항공노선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7. 국제선은 띄우지 말란다

제주도까지 갈 항공유에 조금만 더 보태면 중국이나 일본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항공유는 10%정도 더 쓰지만 운임은 2배를 받을 수 있었다. 제주항공이 국제선 운항을 시도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건교부가 이를 막았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3년정도 국내선 운항을 한 뒤에 이야기하자는 입장이었다. 제주항공은 "안전하지 않다면 제주도도 못 가게 해야지 국내선 승객은 괜찮고 국제선 승객은 안된다는 논리가 말이 되냐"면서 "안전문제까지 포함하는 종합심사를 통해 운항허가를 내주고 제주도는 되는데 오사카는 안된다는 건 모순"이라며 억울해 했다.

8. 운임도 올리지 말란다

영업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소폭의 운임인상이 필요했지만, 설립당시 기존항공사 운임의 70%를 받기로 규정한 제주도와 양해각서가 있어서 독자적으로 올리기 어려웠다. 내심으로는 기존항공사가 운임을 좀 올려주었으면 했지만 국내선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하는 두 회사가 유독 제주노선 요금은 수년째 그대로 두었다.

9. 유가 오르면 그대로 덤터기를 써야 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항공유 인상충격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국제선은 유류할증료 제도가 있어서 유가상승분 만큼 승객에게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선은 유류할증료가 적용되지 않았다. 국제선이 주력인 기존항공사들이 이를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국내선만 운항중이던 제주항공의 상황이 심각했다.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수준일때 취항계획을 짰는데, 취항이후 배럴당 70달러에 육박하는 상황이 되자 수익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10. 070 인터넷전화로 소비자와 통화가 안되었다

고강도 원가절감 방안에 따른 통화요금 절약을 위해 회사의 모든 전화를 인터넷전화로 설치했다. 발신자번호가 070으로 찍혔는데, 생소한 번호 탓에 고객들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객들이 회사로 전화해서 소통부재를 항의하곤 했다. 원가절감 항공사의 애환이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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