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78)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1세대 항공사 ⑥

2023-09-20 06:39:01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제주항공의 설립 준비단계에서 명칭은 ‘제주지역항공사’였다. 그리고 항공사 법인의 첫 상호는 ‘제주에어’였다. 면허취득 직후였던 2005년 8월말 '제주항공'의 상호를 선점했던 김모 제주항공 대표가 제주에어측에 조건 없이 상호를 넘겨주겠다고 알려와 오늘날의 ‘㈜제주항공'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은인의 큰 도움으로 취항 전에 상호를 변경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이에따라 한글이름은 제주항공, 영어이름은 제주에어로 확정했다.

제주항공은 2005년 1월25일 애경그룹과 제주도가 각각 75%와 25%를 출자해 민관합작기업으로 설립됐다. ‘제3의 정기항공사’를 표방한 제주항공은 2006년 6월5일 취항했다. 이날 오전 9시50분 첫 비행기가 서울을 향해 제주공항을 이륙했다. 제주발 김포행 첫 비행기가 도착한 김포공항 주기장에서는 2m 크기의 돌하르방을 배치하고, 객실승무원들과 초대모델 남상미씨가 트랙을 내려오는 탑승객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을 전달했다.

제주항공 객실승무원들이 탑승객에게 장미꽃을 전달하고 있다. 

취항당시 설정한 타겟 고객은 기존항공사의 수요층이 아닌 타 운송수단의 수요층과 틈새고객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항공운임이 비싸 항공여행이 어려웠던 대학생 및 20~30대 젊은층의 그룹여행 △가족 모두의 항공운임 부담이 만만치 않았던 가족여행이나 효도여행 △골퍼 등 동호인들의 단체여행 △매주 1~2회 이상 서울과 부산에서 제주를 오가는 출장승객과 주말부부 등이었다.

이 같은 타겟 고객을 뒤집어 보면, 당시 우리나라 항공시장의 면면을 헤아려 볼 수 있다. K-LCC가 생겨나기 이전에는 대학생 및 20~30대 젊은층은 항공여행을 하기 어려웠다. 또한 가족여행이나 효도여행은 극히 일부에게만 국한된 것이었고,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평생에 제주도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였다.

K-LCC가 넘쳐나고 바야흐로 항공 대중화시대가 열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항공여행을 쉽게 즐기고, 평생에 한번이 아닌 수시로 제주도를 찾는 꿈 같은 일이 펼쳐졌다. 그리고 골프를 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동호인들의 단체여행이 생겨났고, 심지어 서울과 부산에서 제주를 오가는 주말부부도 생겨났다. 이처럼 세상을 바꾼 K-LCC 현상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닌 불과 10여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취항 초 2006년 제주항공은 저렴한 항공운임으로 기존항공사가 양분해온 국내 항공시장의 틈새를 공략한다는 가격정책으로 김포~제주 노선 주중 5만1400원, 주말 5만9100원, 성수기 6만5000원 등 기존항공사 운임의 70~80% 수준을 받았다. 취항기념으로 6월 한 달간 김포~제주 노선 주중 서울발 오후편과 제주발 오전편은 4만6300원을 받았다. 그밖에 김포∼부산은 주중 4만9500원(주말 5만7100원, 성수기 6만2700원), 김포∼양양은 주중 4만1000원(주말 4만7500원, 성수기 5만2300원), 부산~제주는 주중 3만9400원(주말 4만5800원, 성수기 5만300원)으로 정했다. 2023년 현재시점에서 이 같은 운임이 크게 싸 보이지 않는 이유는 K-LCC 등장이후 항공운임이 물가상승률 이하로 매우 완만하게 상승했다는 반증이다.

제주항공의 초기 항공기를 배경으로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5번째가 제주항공 초대모델인 배우 남상미씨. 

제주항공의 초기 항공기는 캐나다 봄바디어사에서 만든 Q400(74인승)으로 단일화해 정비와 부품, 운항교육 등에 드는 비용을 50% 이상 절감했다. Q400 기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운항되다 보니 호기심과 함께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1호기는 등록부호 HL5251기로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오렌지 빛깔의 소형항공기였다.

처음 타본 사람들은 "프로펠러 소음이 크고 실내공간이 좁지만 동체진동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내공간은 기존항공사 항공기에 비해 특히 좁은 느낌을 주었다. 천장이 낮고 짐칸이 좁아 큰 가방을 넣기에는 어려운 게 흠이었다. 내부는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 2자리씩 19줄이었지만 첫 줄이 1자리씩이어서 모두 74석으로 짜여졌다. 또 기내에 1개만 마련된 화장실은 낮고 좁았다. 다만 좌석사이즈나 앞뒤간격이 대형항공기와 같아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등받이가 얇아 더 넓은 느낌도 있었다.

비행기는 동체가 작고 가벼워 불과 7~8초 만에 이륙했다. 좌석의 떨림현상이 있었지만 흔들림이 심하지는 않았다. 비행도중 프로펠러 회전으로 인해 높은 소음이 귀를 자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프로펠러가 있는 객실 앞쪽은 80데시벨(dB), 뒤쪽은 70데시벨 정도의 소음이 나왔지만 국내 단거리 비행에는 지장을 받지 않는 수준이었다.

속도는 시속 660km로 기존항공사 항공기의 비행속도인 700~800km에 못 미치지만 7~8초 만에 이·착륙할 수 있어 김포~제주 간 총 비행시간은 5분 정도 더 소요됐다. 이 비행기의 특징은 날개가 객실창보다 높이 설계돼 객실 어느 자리에서도 창밖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행고도가 7000m 정도로 낮아 비행시간 내내 우리 산하의 구석구석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객실승무원은 2명만 탑승했다. 기내서비스는 원하는 고객에 한해 물이나 주스 같은 간단한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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