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87)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2세대 항공사 ④

2023-11-22 06:15: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2007년 11월28일 건설교통부가 다소 서둘러 발표한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은 대한항공이 불과 이틀 전에 에어코리아를 2008년 5월부터 국제선 전용으로 취항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불승인의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었다. 이에 따라 에어코리아는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건교부 지침에 따른다면 2008년 5월 국내선으로 취항한 뒤 국제선은 2010년 5월 이후에나 부정기 노선부터 운항이 가능하게 됐다.

대한항공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에어코리아가 대한항공의 정비, 운항 경험 등을 그대로 이어받으므로 안전에 관한 국제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있는데도 다른 항공사들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반발했다. 또 "국제선 취항기준은 안전성 여부를 바탕으로 해야지 일률적으로 국내선을 2년 뛰게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부가 안전기준을 만들어 이에 적합한 항공사에 국제선 면허를 내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교부의 새로운 ‘국제선 취항기준`과 대한항공의 에어코리아 국제선 조기 취항 무산 등이 뒤엉킨 2007년 11월 말 항공업계는 각 사별 이해관계에 따라 어수선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당연한 결과라며 내심 반색했다. 그리고 새 기준에 따라 국내선 운항경험 3년이 2년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오히려 제주항공은 국제선 취항시기가 1년 앞당겨지는 ‘과실’을 얻는 등 3사 간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렸다. 건교부는 “에어코리아가 곧바로 국제선을 뛰겠다고 나선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에어코리아라는 신생항공사가 아닌 대한항공 사업부로 항공사업을 추가하겠다고 하면 곧바로 국제선 취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나머지 국적항공사들은 신생항공사의 국제선 취항기준이 이렇게 정리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08년 초가 되자 항공업계에는 ‘대한항공이 이 기준을 바꾸기 위해 뛰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2007년 12월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기업인 출신이며 민선 3기 서울시장 출신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고, 10년만에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이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기업 CEO 출신이라는 평가에 걸맞은 ‘규제철폐’를 내세웠다. 그리고 당시 언론에는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낸 듯한 ‘하늘 위의 전봇대’라는 헤드라인이 자주 등장했다. ‘전봇대’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규제철폐의 상징적인 용어였고, ‘하늘 위의 전봇대’는 ‘하늘 위에도 규제가 있다’는 에두른 표현이었다. 국토부의 국제선 취항기준이 어느새 항공업계의 대표적인 규제로 떠올라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못된 2008년 4월22일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는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한 규제심사에서 국제선 면허조항 신설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신규 항공운송사업자가 국내선에서 2년 이상, 2만 편 이상을 운항하면서 사망사고가 없어야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할 수 있으며,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1년 이상 하면서 사망사고가 없어야 국제선 정기 노선에 취항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규제개혁위는 이 같은 개정안이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지적함에 따라 국토부는 자신들이 불과 4개월여 전에 발표했던 항공법 시행규칙을 크게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이로써 불과 4개월여 만에 K-LCC업계에게는 철옹성 같았던 장벽이 유리벽이 되어버렸다. 꽤 촘촘했던 기존 국제선 면허 조건이 국내선에서 1년에 1만 편 무사망사고로 운항하면 내주는 방식으로 대폭 완화되었다. 기존 취항계획에서 2개월이 늦춰져 2008년 7월 취항예정이었던 에어코리아는 2009년 7월부터 국제선 취항이 가능해졌고, 그 새 K-LCC 시장에 참여한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에어부산도 조기에 국제선을 띄울 수 있게 되었다.

2~3년 늦게 시장에 참여한 대한항공 자회사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K-LCC 2세대 항공사들에게는 국제선 취항까지 3년에서 1년으로 줄어드는 혜택이 돌아갔지만 이미 취항 2년 안팎이 다 되는 동안 국제선 진출을 막아왔던 제주항공과 한성항공 등 K-LCC 1세대 항공사들의 그간의 기회손실과 이로 인한 불공정한 게임 룰은 K-LCC 흑역사로 기록되고 말았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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