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88)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2세대 항공사 ⑤

2023-11-29 05:39: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제주항공이 국내선 운항을 시작한지 2년 1개월여가 지난 2008년 7월11일 국제선 첫 취항당일, 국토해양부는 신규 항공사의 국제선 취항 허용기준을 ‘국내선 1년 이상 운항, 1만 편 이상 무사망사고’로 완화한다고 확정 발표했다. 국토부는 이 같은 내용의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지침)'이 2008년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항공당국의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이 시류와 여건에 따라 단기간 동안 이랬다 저랬다 하는 바람에 2008년 7월 취항예정인 에어코리아는 2009년 7월부터 국제선이 가능해졌고, 아시아나항공이 참여를 선언한 새로운 K-LCC 에어부산도 조기에 국제선을 띄울 수 있게 되는 등 K-LCC 시장은 불공정 게임이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K-LCC업계에서 애초 국토부 지침에 따라 국제선 취항을 하게 된 항공사는 제주항공 한 곳 뿐이었다. 이는 결국 그동안 국제선 취항기준을 2년이나 3년으로 늘려잡았던 동기가 제주항공의 국제선 진출시기를 늦추려는 것이었는지 의심케 했다.

사실 국제선 취항허가의 기준이었던 3년이냐 2년이냐 1년이냐의 문제는 안전성이나 규제 차원을 넘어 신생항공사들에게는 생사가 갈린 문제였다. 신생항공사가 회사 설립 이후 1~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운항을 시작하고 나면 다시 2~3년간의 국내선 취항실적을 쌓는 동안 눈덩이처럼 쌓이는 누적적자를 견뎌내야 하는 보릿고개 기간 동안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을 해야 했다. 그런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설립한 신규 항공사들은 국내선 취항 1년 만에 국제선에 진출하면서 이 같은 취항 초 어려움을 절반이상 줄일 수 있었다.

당시 K-LCC업계에는 제주항공과 한성항공이 기운항 중이었고, 2008년 7월 진에어와 영남에어가 취항 예정, 코스타항공ㆍ에어부산ㆍ이스타항공이 2008년 연내에 취항을 준비중이었다. 정부의 국제선 취항기준 완화가 한편으로는 K-LCC업계의 과열을 낳았다. 신규 출범을 선언한 항공사들은 전국에서 무려 12개사에 달할 정도였다. 항공업계에서는 항공사가 고속버스회사보다 많아질 지경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2008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신규 항공사 국제선 취항기준'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고작 1년도 유지되지 못했다. 2009년 6월10일 항공법 개정안이 다시 시행되면서 완전 폐지됐다. 그동안 항공운송사업 면허체계를 정기와 부정기 항공운송사업자로 구분하던 것을 국제, 국내, 소형 등 3개 항공운송사업자로 개편했다.

이는 항공사 설립 단계에서부터 국제 항공운송사업자로 면허를 받으면 곧바로 국제선에 취항이 가능하도록 개정한 것이다. 국제 항공운송사업자에게 요구되는 조건인 비행기 3대와 자본금 150억원만 갖추면 2009년 9월 이후부터는 국제선을 띄울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각 사업자별 등록기준도 크게 완화했다. 국제 운송사업 면허기준은 종전 항공기 5대, 자본금 200억원에서 항공기 3대, 자본금 150억원으로, 국내 운송사업 면허기준은 항공기 1대, 자본금 50억원으로 대폭 완화했다. 소형 운송사업 면허기준은 19인승 이하 항공기 1대와 자본금 20억원 또는 9인승 이하 항공기 1대와 자본금 10억원으로 등록기준을 낮췄다.

돌이켜보면, 2007년 초 국내선 운항을 3년 이상은 해야 국제선에 취항할 수 있다는 초강력 안전규정을 내세웠고, 2007년 말에는 국내선에서 2년 동안 최소한 2만 편 이상의 운항을 해야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허가하고 이후 국제선 부정기 운항을 1년 이상 해야 국제선 정기운항을 허용하겠다는 등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고강도 안전대책을 요구했던 정부가 불과 2년 만에 전면허용으로 정책을 튼 것이다.

이로써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의 에어부산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고, 여기에 이스타항공이 어부지리로 이득을 챙기는 꼴이 됐다. 반면에 법 개정 전 국제선 취항지침에 따라 국제선에 취항한 제주항공만 유일하게 손해를 본 셈이 되었다. 국제선 취항기준이 수시로 바뀌면서 결국 K-LCC들의 혼란만 가중된 꼴이 됐다. 국토부는 K-LCC업계의 출범 초기인 2007년까지 별다른 국제선 취항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노선허가권으로 국제선 취항을 미뤄왔다. 한성항공의 경우 정부의 지침에 맞춰 항공기 추가 도입 등 투자를 확대했지만 2008년 7월 그 기준이 대폭 완화되면서 투자메리트가 상실돼 해외펀딩 실패로 여파가 이어졌고 2008년 10월18일 자금난으로 운항을 중단하게 되는 단초가 되고 말았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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