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진의 재미있는 K-LCC 이야기] (90) K-LCC의 설립 및 취항사(史)_2세대 항공사 ⑦

2023-12-13 05:39:02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2023년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한 회사’가 되겠다며 합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은 항공업계에서 유난한 앙숙관계로 꽤 유명했다. 1969년 출범한 대한항공은 거의 20년 동안 독점체제로 운영되다가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탄생하면서 양대항공사 체제가 되었지만 두 회사의 관계는 라이벌을 넘어 적대관계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가 2008년 7월17일 김포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계열 에어부산이 2008년 10월27일 김해공항에서 각각 3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취항했다. 이후 두 회사는 모회사의 자존심을 건 대리전을 치열하게 펼쳤다. 1차전은 김포~부산 노선이었고, 2차전은 부산~제주 노선이었다.

사실 이들이 출범하기 전, 내륙의 간판노선이었던 김포~부산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팽팽한 경쟁관계를 유지했는데 부산경남 승객들은 아무래도 지역정서상 대한항공에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이 에어부산의 대주주가 되면서 다소 밀리던 이 노선을 에어부산에 통째로 넘겨주고 대한항공에 맞서게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막힌 노선 운용전략에 지역 승객들은 단골로 이용하던 대한항공을 빠르게 손절하고 부산을 표방한 에어부산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대한항공은 2009년 1월10일 진에어에게 김포~부산 노선을 하루 4회 운항하게 했다. 아시아나항공이 빠진 자리를 훌륭하게 메꿔주고 있던 에어부산을 대한항공과 진에어가 협공하는 꼴이 되었고, 부산 하늘길에는 짙은 전운이 감돌았다. 2008년 7월 김포~제주 노선에서 첫 취항했던 진에어는 김포~제주간 하루 12회 중 4회를 김포~부산 노선으로 이동시켰는데 문제는 운임이었다. 에어부산의 주중 기본운임은 5만2400원, 주말운임은 6만4000원이었는데, 진에어의 주중운임은 5만원, 주말운임은 5만7600원이었다. 에어부산을 잡겠다는 진에어의 노골적인 선전포고였다. 진에어는 여기에 특별할인 명목으로 최대 20%의 추가할인을 제공함으로써 에어부산이 취항 초 성공을 거두고 있던 인터넷 할인제도와 기업우대프로그램 최대 30% 할인 등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취지였다.

진에어의 전방위적인 조치에 부산권 항공시장 수요를 선점했던 에어부산은 자사를 겨냥한 덤핑요금 공세라고 의심하면서 맞대응에 나섰다. 에어부산은 "우리가 대한항공과의 탑승률 격차를 점차 좁혀가자 진에어를 내세워 ‘에어부산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반발했다.

에어부산은 2008년 10월 취항과 동시에 아시아나항공과의 공동운항(코드쉐어, 좌석공유)을 선언하고, 기존 아시아나항공 고객을 그대로 승계 받았다.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은 김포~부산 노선에서 철수했다. 게다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에어부산을 태동시킨 지역상공인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두고 있었다.

이에 반해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김포~부산 간 하루 21회(인천~부산 2회 포함) 운항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에어부산은 물론 모회사와도 경쟁을 벌여야 했다. 대한항공은 기존 운항편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김해공항에서 진에어 승객수속만 대행했다.

두 회사는 비슷한 배경과 환경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 이들은 출범배경부터 생존전략까지 많이 달랐다. 우선 출범배경부터 진에어는 대한항공의 순수한 자회사인 반면, 에어부산은 부산시와 부산지역 기업들이 설립한 뒤 아시아나항공의 지분투자로 생성된 계열사였다.

이들의 운항전략도 달랐다.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충분히 해외사례를 공부하고 진에어를 출범시켰다"며 "결국 독자생존을 해야만 궁극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철저히 독자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과 전략적인 코드셰어를 통해 모항공사의 덕을 톡톡히 봤다. 국내 항공사 간의 코드셰어는 에어부산과 아시아나항공이 처음이었다. 양사의 관계상 이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전략이었다.

또한 두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진에어가 해외 LCC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스란히 반영해 비용은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면, 에어부산은 기존항공사 수준의 서비스를 고수하는 상반된 전략을 구사했다. 이후 모회사를 등에 업고 초기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던 진에어는 출범 2년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반면 철저히 ‘한국형 LCC’를 고수하며 거의 기존항공사 수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한 K-LCC는 에어부산이 유일했다. 에어부산은 기존항공사 객실승무원 유니폼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했으며, 비용이 많이 나가는 기내 음료서비스로 커피를 제공했다. LCC 취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기존항공사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었다.

<글 / 양성진 ‘세상을 바꾼 K-LCC’ 저자>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