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옥's 스마트팜 프리즘] '농업 개도국' 열차의 최후

윤종옥 기자 2019-10-28 09:04:25

우려가 현실이 됐다. 정부가 농업분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가닥을 잡았다.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국인 우리나라는 그간 농업 분야에 한해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아 왔다. 관세 및 보조금 감축률과 이행기간 등에서 혜택을 누려왔다. 농업 개도국 지위는 해외 선진국과의 무역경쟁 속에서 우리 농업을 지탱해 준 동아줄과도 같다. 개도국 지위마저 잃게 된 우리 농업. 우리가 향할 종착역은 어느 께 일까.

개도국 지위, 출발과 종착

우리나라는 96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당시, WTO로부터 선진국임을 인정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WTO 무역체제는 당사국이 선진국인지 개도국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자진신고'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업분야 피해를 우려해 이를 제외한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 농업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사건의 발달은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다. 그간 중국 주요 산업에 응징의 철퇴를 내려 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어이 WTO에 '부당하게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는 나라가 있는지 판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세계 1위 수출점유율을 지닌 중국을 겨냥한 것인데,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농업 부문도 조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가 함께 제시한 '개발도상국이 될 수 없는 나라의 조건 4가지' 때문이다.

조건 4가지는 각각 ▲G20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IMF 세계은행이 분류하는 고소득 국가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0.5% 이상의 국가다. 이 중 한가지라도 부합된다면 개도국으로 인정되선 안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모두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지만, 우리 또한 각 항목에 열외 없이 해당된다.

우리 정부는 개도국 지위 유지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만 했다. 장고 끝 결정은 간단명료하다.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겠다."

개도국 지위 포기한 정부, 왜?

그렇다면 정부는 왜 개도국 지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일까. 무엇보다 명분이 없다. 우리나라 농업 부문은 WTO 판단 기준 4가지 모두에 해당된다. 유일한 방법은 이 4가지 판단 기준들에 문제가 있다며 꼬투리를 잡는 것인데, 이는 그야말로 미국과 맞서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내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자동차를 비롯한 관세 통상 등 여러 시안을 앞두고 있다. 산업 전반적으로 바라보자면,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WTO 회원국으로 확보한 권리는 이어가기 때문에 당분 간 파장 효과가 크진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 사이,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 위배되지 않는 지원책을 마련하면 된다.

실제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4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와 관련 "'공익형 직불제(작물ㆍ가격 상관없이 면적당 일정액 지급)’를 조속히 도입하겠다. 관련 예산을 올해 1조4000억원에서 내년 2조200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고 말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WTO가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농가 숨통 죄는 개도국 지위 폐지

다만 걱정이 앞서는 부분도 있다. 우리 농가가 파도처럼 몰려 들 해외 농산물 공세에 버틸 수 있을 지다.

개도국 지위 포기로 우리 농가들은 더 이상 혜택을 힙 입은 '저가공세'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됐다. '첨단 기술을 토대로 농업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다. 우리나라 농업은 G20 가맹국 중에서도 후진국 대열에 속한다. 앞서 미래 먹거리 자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종자 개량·품질 개선 등에 불을 지피고 있는 해외 농업 선진국을 단기에 뛰어넘을 리 없다.

실로 아쉬움이 많은 결정이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되, 일부 품목은 제한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수도 있었다. 명분으로는 '국가 농산업의 최소 체계유지'를 내세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기름은 이미 엎질러 졌다. 사지로 내 몰린 우리 농가들은 ▶공익형 직불제 도입 ▶농업 예산 확대(전체 예산의 4%)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우리나라 농업 경제를 지탱해 온 그들이 '역귀농을 택하겠다'는 불씨를 언제 던질 지도 모른다.

민·관 합동 특별위원회 구성해 그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경청하고, 농가 소득 보장과 농산물 가격 안정 대책을 조속히 강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윤종옥 기자 yoon@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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