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s 농업딥썰] 정부 지원 스마트팜, 농지 확보가 먼저다

김미정 기자 2019-09-25 10:39:53


가정해보자. A 출판사가 사세 확장을 위해 신입 영업직 사원을 모집한다고 한다. 합격 통보를 받은 입사자들은 들뜬 마음에 첫 출근했지만, 영업에 필요한 차량은 개인이 알아서 구해야 한다는 전달사항을 듣는다. 차량이 없어 영업을 뛰지 못하면 월급도 지급되지 않는단다. 이것이 올바른 전개인가.

답은 명확하다. 가닥을 완전히 잘못 잡았다. 20대 초중반 신입 입사자가 개인 차량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입 영업직 사원들에게 개인 차량이 마련될 때까지 업무 차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스마트팜 창업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문의하기 위해 농부들이 방문한 각 정부 부처다.

귀농을 꿈꾸는 예비 스마트팜 농부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창업농 육성 사업'의 대상에 선정되면 각종 금전적 지원을 받게 된다. 다만 이를 위해선 정부에 '실제 농지를 갖고 있다'는 증명서를 보여야 하는데, 이 때 쓰이는 것이 '농지 임대 계약서'다.

농지 임대차 계약서 양식
농지 임대차 계약서 양식

당장 창업농이 농지 임대 계약서를 마련하기 위해선 높은 임대 비용이라는 장벽에 마주하게 된다. 정부의 각종 지원책은 농지 임대 계약서 제출을 통한 '농영경영체(농업인,농업법인)'를 등록한 다음에서야 받을 수 있다. 토지 임대를 위해 시작부터 빚을 안고 가야 한다.

창업농들이 토지 임대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임대 계약서를 맺기는 수월치 않다. 농지 임차인들이 청년 창업농과 임대 계약서 맺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농지 임차인들은 일정 기간 농업에 종사해 온 사람들이 대다수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여러 농업인 혜택을 누려왔다. 토지세 감면, 상속·증여세 감면, 유류비 지원 여기에 여러 지자체 지원까지 포함하면 그 종류를 전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시점에서 농지 소유주가 창업농과 농지 임대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40년 농사를 지어왔다 하더라도 한번의 계약으로 더 이상 농업인이 아니라는 딱지가 붙게 된다. 그간 누려왔던 여러 감면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는 데 임차인들이 이를 반길리 없다. 토지주들이 간이계약(구두계약) 만으로도 불평이 없는 다른 농업인과의 계약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러한 현상은 토지 매매가 높은 곳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토지 매매가가 높으면 그만큼 더 많은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산시에서 2000평 규모의 밭을 소유 중인 최모(48) 씨는 "아들에게 농사 일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임대 차 계약은 망설여질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최근엔 땅 값이 많이 올라서 일반 상속으로 넘어가게 되면 더 많은 세금이 붙게 된다. 농업인으로서 현 혜택을 유지하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인들의 토지 매입·부동산 시장 활성화·귀농 열풍 등으로 몇년 새 토지가가 2배 이상 뛴 제주도의 경우 농지은행(정부가 토지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저렴한 값에 농지를 임대해주는 제도)에 등재된 농지를 찾아볼 수 없다. 농지은행에 토지를 등재할 경우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이는 토지주들을 농업인→ 일반인으로 바뀌게 한다는 것이 현지 농업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임대 차 계약이 끝나면 땅 값이 높아진 토지주들은 상속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의 창업농 지원 제도가 실제 20~30대 창업농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일까.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는 농지 임차인들이 임대차 계약을 맺더라도 기존 혜택을 존속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창업농들의 시작 길을 터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김미정 기자 liz44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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