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s 농업딥썰] 승계·창업농 뭣이 더 중헌가

김미정 기자 2019-10-25 10:04:54
가정해보자. 지금부터 6개월 뒤, 국가대표 육상 선수와 '100m 달리기 시합'이라는 깜짝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우승 상금은 160억 원. '인생역전'의 꿈을 품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고된 훈련에 돌입한다.

시합 당일, 접수대에 선 지원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 '500만 원 이상의 런닝화 소유자'만 대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고가의 런닝화가 없는 참가자들은 축 처진 어깨로 발길을 돌린다. 이것이 올바른 상황인가?

답은 자명하다. 시합 조건이 완전히 잘못됐다. 일반 참가자들이 수백만 원의 런닝화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육상 선수의 것과 동일한 성능의 런닝화를 무상대여 해주거나, 맨발 시합 등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청년농 육성 사업'을 신청한 예비 청년농들이다.

"농지원부 없으시면 지원을 못 받아요"

지난달 8일, 예비 창업농 김모(30) 씨는 난처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청년 창업농을 지원한다는 정부 정책에 '2019 청년농 사업'을 신청, 최종 대상에 선정됐지만 자금적 지원은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그가 농업인 경영체를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반 년간 필수 교육을 빠짐 없이 이수해왔고, 철저히 짜인 사업 계획서도 제출했지만 소용 없었다.

청년농들이 농업인 경영체를 등록하기 위해선 실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증명서인 농지원부를 먼저 구비해야 한다. 농지원부를 얻기 위해선 토지주(땅 주인)와 농지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수 백에서 수 천만 원에 달하는 토지를 갓 입문한 창업농들이 구매할 수 없을 뿐더러, 월 임대 계약을 맺더라도 매달 수 십만원의 사용료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토지주들이 창업농과 임대차 계약을 맺기 꺼려한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농지를 보유할 경우 농업인으로 인정돼 세금 감면, 유류비 지원 등 각종 정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반면, 창업농과 임대차 계약을 맺을 시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 농업인 지원 대상자에서 누락된다. 임대차 계약을 맺으러 온 창업농들을 바라보는 토지주들의 머리 속 생각은 간단명료하다. "월세 조금 얻으려고 굳이?"

그렇다면 부모로부터 토지를 상속받은 승계농들의 상황은 어떨까. 이들은 이미 농지원부를 지니고 있다. 농업인 경영체를 등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미 농지원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농지를 늘릴 때에도 임대차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다. 간단한 구두 계약 정도면 충분하다. 토지주들이 청년농보다 농업 현지인인 승계농을 선호하는 이유다.

창업농들을 위한 농지은행 제도도 운영되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뚜렷하다. 위와 동일한 이유로 농지은행 등재를 희망하는 토지주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일례로 24일 기준, 농지은행-제주도 지역은 등재 농지 수가 0개다.

당국은 창업농 지원 정책에 대한 골자를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한다. 현 ​지원책은 그야말로 승계농을 위한 정책이다.

승계농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가, 창업농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한가. 양자 모두 빼놓을 수 없는 국가 자원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창업농을 육성하는 방향이 옳다. 창업농이야 말로 지역 농촌경제를 지탱할 미래 핵심 인력이다. 창업농들이 농지원부 작성에 겪는 어려움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김미정 기자 liz44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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